책상과 의자, 만년필과 종이, 책과 노트는 보통 정도 밖에 안 되는 명사로 살아가지만 세상의 모든 보통명사는 누군가에게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고유한 명사, 고유명사가 된다.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책과, 앉아서 나를 지탱해주는 의자도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와 사연을 담고 있는 고유명사다. 내가 애지중지하는 몽블랑·워터맨 만년필도 누군가로부터 선물로 받은 특별한 명사들이다. 만년필로 하얀 종이위에 내 생각과 느낌의 흔적을 옮겨 적을 때 따라나오는 까만 잉크는 곧 내 생각과 느낌의 흐름이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흰 종이는 그냥 백지가 아니라 내 생각과 느낌을 받아 적어서 오랫동안 보관하고 싶은 꿈을 갖고 있는 특별한 종이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수많은 책 중 그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나에게 읽히기를 기다렸다가 내가 읽어주면 무척이나 좋아하는 선택받은 책이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고 때로는 내 생각에 비춰 저자의 생각을 내 생각으로 바꿔보기 때문에 나에게는 특별한 지적 자극제다. 읽고만 읽기 아까워 심금을 울리는 명문장을 받아 적은 노트는 책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지닌 나의 비망록이다. 시력이 좋지 않아 쓰고 있는 안경은 그냥 안경이 아니다. 멀리 있는 물체를 자세히 보기 위한 망원경이며, 가까이 있는 것을 잘 보기 위한 현미경이고, 세상의 변화무쌍함을 관찰하기 위한 만화경이다. 마라톤 풀코스를 나와 함께 달린 신발은 42.195㎞를 달리는 동안 나의 몸을 지탱하면서 내딛는 충격을 흡수하고 도로 위의 마찰과 싸우면서 나오는 땀이 스며든 나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그 신발은 그냥 신발이 아니라 내 발과 일체가 되어 마라톤을 완주한 감동의 신발이다.
세상의 모든 보통명사는 보통이 아니다. 다 특별한 사연과 배경을 지니고 있는 특별한 고유명사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