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전남 영암 F1경기장. 거센 바람이 부는 벌판에서 무인 자율주행자동차 경진대회를 보고 있자니 문득 굉장히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인이라면 10년이 지나도 보기 어려운 장면을 먼저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F1경기장을 시속 50~60㎞로 달리는 자동차에 아무도 타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면 누구라도 비슷한 생각이 들지 않을까. 더욱이 그 차들은 그냥 달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신호등이나 보행자를 보고 멈춰서기도 하고 속도제한 표지판을 보고 속도를 줄이기도 하며, 갑자기 도로 한가운데 떨어진 장애물을 피해가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자동차 후발주자고 자율주행차에 있어선 더욱 그렇다고 하지만, 이날 대회에서만큼은 무인차 기술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국내 자동차 업계의 자율주행차 대응이 선진업체와 비교해 너무 미지근하다는 점이다. 현대기아차는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고 있다`는 말만 내놓을 뿐 아무런 구체적 내용물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해외 선진업체는 실물을 공개하며 상용화 시기까지 언급한다. 벤츠가 최근 열린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자율주행차를 깜짝 공개한 게 대표적이다. 닛산, 도요타 등 완성차 업체는 물론 콘티넨탈이나 보쉬 등 부품업체까지도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게 현실이다. 2020년을 전후해 상용화 계획까지 나왔다.
보안상 첨단기술을 공개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개할 기술이 없어서 의도적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만난 현대차 연구원 출신 한 대학교수는 그 이유로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의 경직된 연구개발(R&D) 분위기를 꼽았다.
자율주행차처럼 창의적 아이디어가 필요한 분야에는 자유로운 R&D 분위기가 필수인데, 남양연구소는 너무 관료조직화됐다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넘치는 젊은 연구원들이 좌절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이러다가는 선진 업체에 뒤지는 것은 물론이고 강력한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에조차 추월당할 수 있다는 경고를 현대기아차는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