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들러리 세우는 기관장 공모제

요즘 정부 산하 공공 기관장 공모가 줄을 잇는다. 산하 기관은 정부 자금을 집행하는 성격이 짙어 파워면에서 정부 못지 않다. 산업계를 지원하는 기관일수록 영향력은 일반인이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국가가 산하 기관장 선출 방식을 굳이 임명제가 아닌 공모제로 진행하는 이유는 전문성과 경영 능력을 고루 갖춘 인사를 발탁하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공모를 할 이유가 없다. 복잡한 절차 없이 수 십년 간 행정 경험이 풍부한 정부 관료를 그 자리에 앉히면 그만이다.

최근에 진행되는 공모 과정을 보면 본래 취지가 무색하다.

형식적인 채용 절차만 있을 뿐이다. 열 중 여덟, 아홉은 일찌감치 낙점받은 인사가 자리를 차지한다. 인사위원회가 있지만 제역할을 못한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기본으로 해야 할 평가가 `힘의 논리`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언제부터인가 기관장 인사는 누가 가장 센 `빽`을 가졌느냐가 척도로 여겨질 정도다. 애써 포부를 갖고 지원한 후보는 자신의 역량과 관계 없이 남의 집 잔치에 들러리만 서는 셈이다.

최근 초미의 관심사가 된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공모도 마찬가지다. 세간 이목이 집중되고 있으나 후보자가 3배수로 압축되기까지의 절차와 내용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럼에도 특정인 이름은 자주 오르내린다. 차관급 출신 전직 고위 관료가 이사장으로 유력시된다는 등 소문만 무성하다.

후보자는 프라이버시 문제로 공개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공모 절차는 투명해야 한다. 문제는 미래창조과학부의 태도다. 표면상으로야 이사장 후보추천위원회가 공모를 진행하는 것처럼 돼 있지만 막후에 미래부가 있을 것으로 예측들 하고 있다. 공모가 처음 시작될 때부터 모든 진행 과정을 함구하라고 지시한 근원지로 보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그간 자주 입에 오르내리던 인사가 다른 후보자보다 충분한 역량과 자질을 갖춰 이사장이 된다 한들 미래부의 비호를 받아 됐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울 것이다.

공모를 진행하는데 소요된 행정력과 후보자의 노력 등을 생각하면 차라리 임명제가 더 효율적이다. 공공 기관장 선출 방식,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다.

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