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코닝이 강도 높은 `혈맹`을 맺었다. 삼성으로선 차세대 먹거리로 삼은 소재사업을 조기 육성하기 위해 글로벌 광폭 행보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계약을 두고 삼성그룹 후계 구도를 준비하는 작업이 본격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독일 노발레드 인수와 제일모직 패션사업 분리 발표 이후 삼성의 소재사업 투자는 더욱 탄력을 받는 모습이다.
◇왜 코닝인가
소재사업은 완제품·부품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고 기술 확보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원천기술이 중요하고 부가가치도 높다. 대신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면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단기간 내에 키울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삼성이 택한 전략은 글로벌 인수합병(M&A)이다. 독일 노발레드 인수와 코닝 지분 투자가 이어진 것은 바로 이런 배경이다.
코닝은 삼성이 가장 취약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기업이다. 삼성은 제일모직·삼성정밀화학 등 유기화학 전문 군소 계열사들을 거느리고 있지만 무기화학 소재사업 기반은 없다. 코닝은 삼성이 확보하지 못한 무기소재 분야에서 지난 160년 동안 세계 최고 지위를 차지해왔다. 특히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절대강자다. 코닝은 LCD와 발광다이오드(OLED) 기판 유리 시장에서 60% 이상의 점유율을 자랑한다. 원재료를 섭씨 1000도 이상 용광로에서 녹인 뒤 아래로 떨어뜨리는 방식의 `퓨전 공법`은 코닝 만이 갖고 있는 고품질 유리 제조 기술이다. 삼성은 지난 40년 동안 코닝과 합작사를 설립하면서 부족한 기술력을 보완해 왔다.
◇삼성과 코닝, 전략적 협력 어떻게 이룰 것인가
삼성은 코닝과 새로운 협력 관계를 구축하면서 소재기술을 전수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은 최대주주가 되도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대주주는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중요한 정보를 가장 먼저 습득할 수 있는 위치다.
삼성디스플레이가 19억달러(약 2조60억원) 지분교환에 그치지 않고 추가 4억달러(4224억원)를 투입하는 것도 1대 주주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삼성과 코닝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협력해 왔다. 1973년 세운 삼성코닝은 브라운관 유리를, 1995년에 설립한 삼성코닝정밀소재(옛 삼성코닝정밀유리)는 LCD 기판 유리를 생산했다. 지난해에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판 유리를 위해 삼성코닝어드밴스드글래스를 세웠다. 코닝은 디스플레이 외에 여러 분야에 걸쳐 필요한 핵심 유리·세라믹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통신(광섬유), 환경(배기가스 제어용 담체·필터), 생명과학(세포 배양 용기 및 신약 개발 도구), 특수 소재(커버유리·반도체·특수렌즈) 분야에서도 코닝은 기술력을 자랑한다. 코닝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이들 사업을 통해 삼성은 새로운 분야에 진출할 수 있다.
◇삼성 소재사업 강화, 후계 구도 대비용인가
세트사업은 2세 승계 후 안정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소재사업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 영역이다. 이건희 회장이 후계를 위한 차세대 먹을거리로 소재사업을 바라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소재사업 강화를 위해서는 우선 화학계열사 간 사업 조정을 통해 집중하는 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 달 문을 열 전자소재연구소는 그 핵심 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노발레드와 코닝에 이어 삼성이 글로벌 소재기업과 연이어 합작 또는 M&A를 단행할 공산도 커 보인다.
업계는 이번에 코닝이 삼성코닝정밀소재의 개인 지분까지 인수한 것도 삼성의 포석이 담겨 있다고 내다봤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삼성코닝정밀소재 지분을 매각하면 삼성그룹과 홍 회장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정리된다. 홍 회장 입장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뺏기게 된 셈이다. 삼성코닝정밀소재의 7.32%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홍 회장은 2011년 2464억원, 2012년 1300억원, 2013년 975억원 등 거액의 배당금을 받았다. 코닝이 지분인수 대금을 정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인수금액은 4000억원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년간 받은 배당금 총액에도 못 미치는 값이다.
◇코닝은 동북아 지역 체계 완성
코닝 입장에서도 삼성이 최대주주가 되는 것은 반길 일이다. 사모펀드인 현 최대주주보다 사업적 시너지가 크다. 연 3조~4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삼성코닝정밀소재가 코닝에 흡수되면 매출도 25%나 늘어난다.
코닝은 그동안 중국·대만·일본 지역에서 모두 100% 자회사로 사업해 왔다. 오직 한국에서만 합작사로 사업을 펼쳤다. 동북아 지역 모두 100% 자회사 체계가 구축되면서 비용 절감 효과도 클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코닝은 삼성디스플레이와 합작 설립하기로 한 중국 쑤저우 공장은 전면 재검토에 들어간다. 삼성코닝정밀소재의 영업권이 한국에 제한되기 때문에 쑤저우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지만, 코닝이 지분을 모두 인수하면서 새로 공장을 지을 필요가 없어졌다.
웬델 P 웍스 코닝 회장은 “이번 계약으로 상당한 원가 절감 시너지 효과를 누릴 것”이라며 “코닝은 첨단 유리 시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
문보경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