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56>격전, IMT2000(3)

“동기냐, 비동기냐.”

IMT2000 기술표준 방식은 통신사업자들이 건너야 할 또 하나의 강이었다.

2000년 10월 10일. 이 논쟁이 일단락됐다.

정보통신부는 이날 IMT2000 기술표준 문제와 관련해 정보통신정책심의위원회(위원장 곽수일 서울대 교수)를 열어 기술표준협의회가 건의한 대로 IMT2000용으로 할당된 60㎒ 주파수 대역폭을 20㎒씩 쪼개 동기 1개, 비동기 1개, 임의선택 1개 등으로 구분하는 방안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안병엽 정보통신부 장관이 2000년 10월 10일 정통부 기자실에서 IMT2000 기술표준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병엽 정보통신부 장관이 2000년 10월 10일 정통부 기자실에서 IMT2000 기술표준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통부는 동기식을 채택한 사업자에는 공정경쟁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사업자와 협의해 적절한 인센티브를 부여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안병엽 정통부 장관(17대 국회의원·ICU 총장 역임, 현 KAIST 초빙교수)은 이날 오전 기자실에서 “당초 밝힌 `업계 자율` 원칙을 번복한 데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 “협의회에서 산업의 균형 발전을 위해 동기·비동기 두 표준이 모두 채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건의해 정부가 부득이 개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 장관은 이어 “만약 허가신청 법인이 모두 하나의 기술방식으로 신청하면 고득점 순으로 2개 사업자만 선정하고 나머지 신청법인은 탈락시킬 방침”이라며 “앞으로 정부는 당초 일정에 따라 사업자도 올해 안에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기술표준 방식을 발표하자 그동안 비동기식을 주장하던 한국통신(현 KT)과 SK텔레콤, LG의 IMT2000 3개 사업권 신청업체는 난감했다. 비동기식 티켓은 두 장. 이들이 모두 비동기를 신청하면 한 곳은 탈락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 방침에 SK텔레콤이 즉각 유감을 표시하고 나섰다. SK텔레콤은 `정보통신부의 기술표준 발표에 대한 SK텔레콤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통해 “당초 `복수 표준` `업계 자율`이라는 정책에서 `표준방식별 주파수 할당` 방식으로 정책을 변경한 것은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은 “우리나라가 CDMA 종주국인 만큼 후발사업자가 동기식을 맡아도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게 되지만 비동기식은 선두 지배적 사업자가 뛰어들어야 세계 유수의 업체들과 경쟁할 수 있다”며 비동기식 방침을 고수했다.

기술표준협의회는 그해 9월 22일부터 10월 6일까지 협의회 5회, 기술소위 2회, 공개토론회 1회 등을 열어 논의한 기술표준 합의 결과를 10월 9일 정통부에 제출했다.

협의회 건의 내용의 골자는 △IMT2000 기술 방식은 모두 CDMA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동기식·비동기식 방식이 균형 있게 발전해야 한다 △정보통신 서비스산업과 제조업체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경우 정부는 적절한 유인수단(인센티브)을 강구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와 관련한 안병엽 장관의 회고.

“기술표준 방식과 관련해 위원회에 어떤 입장도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국민 편익과 국가 정보통신산업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기술표준 방식을 자유롭게 논의해 달라고만 했습니다.”

정통부는 기술표준이 확정되자 정보통신정책심의위 심의를 거쳐 기간통신사업자 허가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기본계획에는 IMT2000 사업자 선정일정과 심사위원 구성, 평가방법, 항목별 점수, 평가 장소 등 사업권 신청업체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이 다 들어 있었다.

정통부는 “이 기본계획을 바탕으로 심사를 엄정하고 투명하게 실시해 IMT2000 사업자 선정 시 한 점의 의혹도 생기지 않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계획에 따르면 IMT2000 허가신청 접수는 정통부 14층 대회의실에서 10월 25일부터 10월 31일까지, 중복참여 여부 확인(11월 3~11일), 자격심사 및 계량평가(11월 20~29일), 비계량평가(12월 5~14일) 등을 실시하기로 했다.

정보통신부는 그해 10월 18일 IMT2000용 주파수 할당계획을 공고했다.

주파수는 120㎒ 대역 중 상·하향 각 60㎒를 3개 대역으로 분할하고 기술 방식은 동기식 1개, 비동기식 1개, 임의선택 1개로 정했다. 실질적으로는 동기식 1개, 비동기식 2개였다. 주파수 할당대가(출연금)는 상한액 1조3000억원, 하한액 1조원 범위 안에서 허가신청 법인이 제시하는 금액으로 정했다. 허가신청 법인 간 경쟁이 없을 때는 1조1500억원을 하한액으로 했다.

그해 10월 25일.

정통부는 이날 오전 9시부터 14층 대회의실에서 IMT2000 사업권 신청서 접수를 시작했다. 접수반은 이기주 통신기획과장(방통위 기획조정실장 역임, 현 한국인터넷진흥원장)을 반장으로 통신기획과 허가담당 직원들로 구성했다. 이들은 허가신청 접수 시 허가신청서와 서약서 및 주파수 할당신청서, 사업계획서 등 제출서류를 일일이 확인한 뒤 접수증을 교부했다.

그러나 첫날부터 29일까지 접수장은 개점휴업 상태였다. 그러다가 10월 30일 오전과 오후에 LG텔레콤과 한국통신(현 KT)이 차례로 비동기 기술표준 방식으로 허가신청서를 제출했다.

LG텔레콤 측은 “처음부터 IMT2000 사업을 비동기식 기술표준 방식으로 할 것을 결정하고 준비해 왔다”고 밝혔다.

남중수 한국통신 IMT2000사업본부장(KT 사장 역임, 현 대림대 총장)은 “기술표준 방식은 비동기 방식을 그대로 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은 마지막 날인 10월 31일 오전 비동기식 기술표준으로 허가신청서를 제출했다.

접수 마지막 날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동기식 사업권에 한국IMT2000 사업추진단이 31일 오전 기습적으로 허가신청서를 제출한 것이다. 정통부나 업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기주 기획과장의 말.

“이미 사업포기를 선언한 바 있어 사업권 신청에 부정적인 시각이 없지 않았지만 심사기준에 부합해 신청서를 접수했습니다.”

이종명 단장(하나로통신 부사장 역임, 현 명지대 교수)은 “국익을 위해 동기식 사업자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해 사업 참여를 결정했다”며 “비동기 방식 사업자보다 6개월이나 1년 정도 먼저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장은 “사업신청 주체는 하나로통신과 3만5000여 국민 주주, 그리고 앞으로 참여하게 될 대기업과 중소·벤처업체, 해외사업자들”이라고 설명했다.

정통부는 그해 11월 1일 IMT2000 허가신청 접수결과를 발표했다. 이미 예상대로 LG글로콤, 한국통신IMT, SK-IMT 3개 법인은 비동기 방식으로, 한국IMT2000은 동기 방식으로 신청했다.

석호익 정통부 정보통신지원국장(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KT 부회장 역임, 현 통일IT포럼 회장, ETRI 초빙연구원)은 하나로통신과 국민 예비주주로 구성된 한국 IMT2000 법인의 허가 가능 여부에 “이미 발표한 심사기준에는 금년 8월 이후 신규법인을 설립할 경우 이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고 한 만큼 일단 이 신설법인이 컨소시엄임이 맞다”고 밝혔다.

정통부는 비동기식은 3개 법인이 허가신청을 해 1개 법인은 탈락하고 동기식은 1개 법인이 허가신청을 해 적격 판정을 받으면 사업자로 선정한다고 설명했다.

정통부는 11월 3일부터 11일까지 정통부 전산관리소에서 중복참여 여부 확인 및 허가 가능여부를 확인했다. 확인반은 이기주 과장이 반장을 맡고 홍진배 사무관(현 미래창조과학부 통신이용제도과장), 최우혁 사무관과 박동욱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박사(현 방송미디어연구실장), 이상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팀장이 반원으로 참여했다.

자격심사는 11월 20일부터 29일까지 정통부 전산관리소에서 진행했다. 심사반장은 석호익 정보통신지원국장이, 부반장은 이기주 통신기획과장, 반원은 홍진배 사무관, 이홍재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박사(현 아주대 교수), 임명환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팀장(현 책임연구원), 이광희 선임연구원(현 산업전략연구부장)이 반원이었다.

일시출연금 심사는 11월 28일 정통부 12층 회의실에서 실시했다.

비계량평가 지원반은 석호익 정보통신지원국장, 부반장은 이기주 통신기획과장, 반원은 서석진(현 강원지방우정청장), 박노익 서기관(현 국민대통합위 파견), 홍진배 사무관,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김용규 박사(현 한양대 교수), 박동욱 박사,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서 임명환, 이상규 팀장 등이 참여했다.

심사위원 구성은 사업자 선정의 공정성·객관성과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였다. 만에 하나 심사과정에 물의가 발생하면 정통부는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 있었다.

정통부는 그해 11월 6일 시민단체와 학회, 연구기관 등 모두 24개 기관에 추천을 의뢰했다. 추천자격은 정보통신 관련 국내외 박사학위를 받고 해당분야 5년 이상 근무자 중 2년 이내에 허가신청 법인 대주주 및 주요 주주로부터 용역을 받은 사실이 없는 사람이었다.

정통부는 이 중 19개 기관이 추천한 60명의 후보자를 대상으로 심사를 벌여 12월 초 2배수로 1차 선정작업을 했다. 이어 2차 선정작업을 해 영업 분야 9명, 기술 분야 9명 등 모두 18명의 심사위원단 구성을 끝냈다.

안 장관의 증언.

“심사위원은 실무자들이 작성한 명단을 토대로 확정했어요. 미처 연락이 안 된 경우는 제가 직접 전화하기도 했습니다.”

정통부는 그해 12월 4일 같은 시간에 작성한 명단을 가지고 전화를 해 통화가 된 순서대로 심사위원을 선정했다. 부재중일 때는 메시지를 남기고 10분 이내에 연락이 없으면 제외했다.

정통부는 12월 5일 심사위원 명단을 확정했다.

김인식 정통부 공보관(현 한국스마트TV산업협회 부회장)은 이날 “심사위원들은 박사들로 해당분야 경력이 5년 이상이고 2년 동안 IMT2000 관련업체와 무관한 사람들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12월 5일부터 14일까지 충남 천안에 있는 정보통신공무원교육원에서 숙식을 하며 본격적인 심사에 착수했다. 심사 장소는 외부인의 접근이 철저히 통제됐다.

심사위원들은 12월 7일 허가신청법인 대표들로부터 사업계획서 설명을 듣고 14일까지 비계량 평가를 했다. 정통부는 첫날 오전 4개 신청법인 대표들이 참석해 20분씩 사업계획서를 발표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정통부 출입기자단이 추천한 5명의 풀기자단이 입회했다. 신청법인들은 심사점수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고득점만이 사업권 티켓을 거머쥘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