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Growth 2.0]<36>제2 중동신화, 발전플랜트가 쓴다

지난달 15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샤리스타니 이라크 에너지 부총리와 양자회담을 가졌다. 이라크 국가 재건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의 진출을 지원사격하기 위해서다.

[Green Growth 2.0]<36>제2 중동신화, 발전플랜트가 쓴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올해 2월 준공한 이라크 쿠두스 가스터빈발전소 전경.
현대엔지니어링이 올해 2월 준공한 이라크 쿠두스 가스터빈발전소 전경.

이날 회담에서 윤 장관과 샤리스타니 부총리는 이라크 인프라 시설 사업의 양국 협력을 논의했다. 주요 내용은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 원유 공동비축 사업, 국내기업의 재건 프로젝트 참여, 인력 양성, 전력설비 안전진단 분야 협력 등이다. 앞서 산업부는 이라크 석유부와 `한-이라크 에너지협력 MOU`를 교환하기도 했다. 1980년대를 이끌었던 중동 건설신화를 에너지 플랜트로 이어가는 모양새다.

석유화학, 발전 설비로 대표되는 에너지 플랜트는 그동안 국가 경제 부양에 한 축을 담당해 온 분야다. 2010년 UAE 원전 수주를 기점으로 해외 수주액이 큰 폭으로 성장하면서 발전 플랜트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2009년도까지 460억달러 선에 머물던 해외수주액은 2010년을 기점으로 껑충 뛰었고 지금도 그 수준을 유지 중이다.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지난해 해외 플랜트 수주액은 647억달러를 기록하면서 선방하는 모습을 보였다.

플랜트 수출에 정부 차원 지원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15일 이라크 정부와 국내 기업의 재건 프로젝트 참여 협력을 논의했던 산업부는 같은 날 `이라크 재건프로젝트 플라자`를 열기도 했다. 이 행사에는 15개 이라크 정부 발주기관 관계자와 150여 국내기업 임직원이 참석해 상담회를 가졌다.

금융 부문에서 지원사격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 정부는 플랜트 사업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수조원대 사모펀드를 만드는 내용의 `해외건설 플랜트 수주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선진화 방안은 단순 도급사업에 머물던 국내 건설사의 플랜트 수주를 투자개발 사업으로 확대하고자 추진됐다. 정부는 투자개발형 플랜트 사업을 키우려 2017년까지 사모펀드로 75억달러, 정책금융기관 주도의 펀드로 11억달러를 모집해 총 86억달러 기금을 조성할 예정이다.

최근 국내 건설 및 엔지니어링 업계는 석유화학에서 발전소로 플랜트 수주 무게 중심을 옮기는 모습이다. 중동, 북아프리카로 발전소 건설 프로젝트 발주가 늘면서 국내 기업의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제2 중동신화 지역으로 정조준한 이라크만 해도 2015년까지 352억달러를 전력 부문에 투자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한해 발전 플랜트 총 해외 수주액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같은 동향은 수치상으로도 드러난다. 한국플랜트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발전·담수 분야 프로젝트 수주는 지난해보다 77.9% 늘어난 121억달러를 기록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석유·가스 분야도 대형 정유 관련 프로젝트 수주로 전년 대비 70% 증가한 93억달러를 기록했지만 과거 300억달러 수준 성적을 내던 것에 비하면 많이 줄어 발전 부문에 역전된 상황이다. 석유화학 분야 텃밭이었던 중동 지역 프로젝트도 점점 줄면서 수주액이 감소하고 있다.

석유화학은 시장은 어느 정도 성숙기에 접어든 반면에 발전 부문은 개발도상국 산업성장 기초 인프라로 그 수요가 늘고 있는 모양새다.

발전 플랜트 수주에서는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현대엔지니어링과 올해 매출 50% 해외수주 공세를 밝힌 대우건설, 전통 강자인 대림산업 등이 활약하고 있다.

발전 플랜트 부문에서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승세는 유독 눈에 띈다. 매출액은 2조원 수준으로 다른 기업보다 적은 편이지만 영업이익은 2000억원대로 동종 업계에서 유일하게 10% 이상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해외 매출 비중이 90%로 31개국에서 사업을 수행, 포트폴리오를 넓혀 특정 국가 수주 의존도가 낮은 것도 강점이다.

현대엔지니어링에 올해부터 2016년까지 준공 예정된 발전 설비만도 15기가량으로 발전용량으로 치면 3500㎿ 수준에 달한다. 원전 세 기를 넘어서는 물량이다. 이밖에 변전소 건설, 발전소 증설 등 다수의 전력 관련 공사를 앞두고 있다.

진출 지역도 콜롬비아(테르모타사헤로 화력), 방글라데시(아쉬간지 복합화력), 알제리(아인아르낫 복합화력) 등 동유럽, 남미,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로 다양하다. 특히 최근에는 이라크 시장에 주력해 올해 준공한 쿠두스 가스터빈 발전소를 비롯해 루마일라 가스터빈 발전소, 타자 가스터빈 발전소 등 내년 1월까지 총 10기의 발전소를 준공할 예정이다.

올해 해외 매출 50%라는 공격적 목표를 설정한 대우건설은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2조원 규모의 발전소 공사를 수주하는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다. 모로코 사피 지역에 4년간 1320㎿ 규모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 공사로 대우건설 해외시장 진출 사상 단일 공사로는 최대다. 대우건설은 지난해에도 플랜트 업계 최대 화두였던 1조2000억원 규모 알제리 소넬가즈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북아프리카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대우건설의 해외 수주실적 중 70% 이상이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북아프리카 지역을 거점 시장으로 수성하고 남미로 진출 영역을 넓힌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국내외 다양한 발전플랜트 수주 실적을 확보하고 있는 대림산업은 지난해 베트남 타이 빈 2단계 석탄화력발전소, 필리핀 석탄화력발전소를 잇달아 수주하는 등 해외 발전플랜트에서 12억달러 이상 수주 실적을 기록했다. 올해 8월에는 말레이시아 전력청과 12억달러 규모 발전소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만중 지역에 1000㎿급 초대형 발전소 1기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로 2017년 준공 예정이다.

국내 건설 및 엔지니어링 기업의 발전 플랜트 수주 행렬은 계속될 전망이다.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른 국제적 전력난으로 동남아시아에서 시작해 중동, 아프리카로 그 수요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해외 민자발전 분야에서 일괄도급사업(EPC)에 더해 투자를 진행하고 운영수익을 회수하는 모델로 확대되고 있다. 단순 도급에만 머물던 수익모델에 발전소 운영 수익을 더하면서 지속적 매출 창출이 가능한 캐시카우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발전 플랜트는 3000억달러가 넘는 대규모 시장이면서도 그 성장세가 계속되고 있다”며 “최근에는 설계와 시공, 조달을 도맡아 해주는 EPC 사업에 더해 해당 발전소에 지분투자까지 진행, 준공 이후에도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로 사업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플랜트 수주 현황(단위 : 억달러)

자료: 한국플랜트산업협회

◇해외 플랜트 수주, 저가 경쟁보다는 실속

해외 플랜트 수주는 국가 경제를 이끌어 온 주역이기도 했지만 국내 건설사가 실적부진에 허덕이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2009년부터 과다 경쟁으로 수주한 플랜트 공사 준공시일이 다가오면서 사업자를 압박하고 있다.

문제는 원가율에 육박하는 사업 수주에서 시작된다. 국내 주택시장 침체와 함께 글로벌 경제까지 흔들리면서 건설사의 일감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꾸준히 플랜트 발주가 나오던 중동시장에서 경쟁이 과열됐던 것이 컸다. 국내 기업은 물론이고 중국, 유럽, 일본 등 너나할 것 없이 저가수주 경쟁을 펼쳤다.

저가수주는 곧 손실로 다가왔다. 특히 주택 건설에서 발전플랜트로 신규 진입한 건설사는 잦은 공기 지연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GS건설이 해외 발전 플랜트 사업에서 대규모 손실을 기록해 수장이 교체되는 아픔을 겪었고, 최근에는 삼성엔지니어링이 수천억원대 적자를 기록하면서 업계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업계는 발전 플랜트 사업을 단순 도급을 넘어 새로운 사업으로 진화시키고,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한 시장 포트폴리오 확대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의 발전 프로젝트 입찰에 그룹 계열사끼리 경쟁할 정도로 일부 시장에만 얽매여서는 미래가 없다는 분석이다. 이럴 때는 수주 가능성도 높지 않다. 동남아시아 시장에서는 입찰에서 계열사 간 경쟁이 붙으면 대부분 이를 배제하는 게 관례다.

몇몇 건설사를 중심으로 EPC+α 전략이 구사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발전소 건설은 물론이고 해당 프로젝트에 투자해 건설 이후 판매전력 수익의 지분을 챙긴다는 그림이다.

시장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경제 침체에도 역대 두 번째 수주실적을 거둔 것은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 진출의 역할이 컸다. 과거 60%에 달했던 중동지역 플랜트 수주 비중은 32.3%로 낮아졌고, 아시아 17.9%, 아프리카 32.1% 등 신흥시장으로 수주가 고르게 퍼지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중동 편중세가 점차 완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업계는 중동시장이 주도했던 대규모 플랜트 발주를 아프리카가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알제리,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대규모 발전소 건설이 이어지면서 관련 움직임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넓은 영토와 많은 매장 자원, 향후 개발 가능성과 세계 각국의 공적개발원조 등 아프리카에서 플랜트 시장의 폭발적 성장이 예상된다”며 “그동안 건설사가 집중해 온 중동 지역을 거점 삼아 아프리카로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