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T2000 동기식 사업자는 계획대로 2월 말 신청서를 접수하고 3월 중순까지 선정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01년 1월 19일 오전 청와대 세종실. 안병엽 정보통신부 장관(17대 국회의원·ICU 총장 역임, 현 KAIST 초빙교수)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새해 업무보고를 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정통부는 2000년 12월 15일 IMT2000 비동기식 사업자는 선정했으나 동기식은 과락으로 사업자를 선정하지 못했다.

안 장관은 IMT2000 서비스와 관련해 “2.5세대 동기식 이동통신 서비스 조기 보급으로 무선인터넷을 활성화하고 비동기 사업자도 적기에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기술개발을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안 장관은 “과당경쟁을 빚고 있는 국내 통신 시장을 3개의 유무선 종합통신사업자그룹으로 구조개편을 적극 유도할 방침”이라면서 “한국통신(현 KT) 민영화도 2001년 상반기 외국인 주식 소유한도 49%를 전량 해외 매각하는 등 선(先)해외 매각, 후(後)국내 매각 쪽으로 방향을 바꾸겠다”고 보고했다.
김 대통령은 업무보고를 받은 후 안 장관과 실·국장 등 참석자와 40여분간 공공부문 정보화, SW산업 불법 복제 근절대책 등에 관해 토론회를 진행했다. 정통부는 대통령에게 보고한 IMT2000 동기식 사업자 선정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선정 작업을 서둘렀다.
그해 1월 22일.
정통부는 이날 두 가지 정책을 발표했다. 하나는 기간통신사업자 허가신청요령 및 심사기준 개정안 고시(2000-71호)다. 우수한 IMT2000 동기식 사업자를 선정하기 위해 비동기식에 참여한 법인도 동기식 사업에 지분 참여를 허용한 것이다. 그러나 비동기식 허가법인과 법인의 대주주는 지분 참여를 못하게 했다.
다른 하나는 IMT2000 서비스산업 균형발전 대책이었다. 핵심은 IMT2000 동기식 사업자에게 사업자 식별번호 선택권과 선호 주파수 대역을 우선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또 우수한 동기식 사업자가 선정되도록 국내외 서비스사업자와 통신장비 제조업체, 콘텐츠업체,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동기식 IMT2000 그랜드 컨소시엄을 구성하도록 했다.
석호익 정통부 정보통신지원국장(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KT 부회장 역임, 현 통일IT포럼 회장·ETRI 초빙연구원)은 기자실에서 동기식 사업자 투자비 절감을 위해 사업 초기부터 2~3세대 간 로밍과 IMT2000 사업자 간 기지국 공용화를 적극 추진하고 전기통신사업법 개정 때 근거규정을 마련해 상반기 중 이를 고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정통부의 IMT200 동기식 사업 지원계획에 재계의 반응은 냉랭했다. 비동기식에 신청했다가 탈락한 LG텔레콤은 동기식 사업에 불참의사를 거듭 확인했다. IMT2000 동기식 유인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정통부는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정통부는 그동안 정통부 실·국 및 연구기관 실무자 18명으로 운영했던 IMT2000전담반(반장 이기주 통신기획과장)을 그해 1월 말로 해산했다. 동기식 사업자 선정 업무는 통신기획과에서 담당하기로 했다.
그해 2월 23일. 안병엽 장관은 기자간담회를 갖고 “당초 IMT2000 동기식 사업자 선정일정을 2월 말 허가신청 접수, 3월 중순 사업자 선정을 목표로 추진해 왔지만 능력 있는 컨소시엄이 나올 때까지 허가신청 접수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고육지책이었다.
안 장관은 “IMT2000 동기식 사업성에 우려와 국내외 우수기업의 신중한 자세로 컨소시엄 구성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관련 기업들의 연기 요청을 받아들여 접수 시한을 연장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안 장관은 “CDMA산업 육성과 수출을 위해 동기식 사업자는 반드시 선정하겠다”며 “자금력과 기술력이 있는 기업이 참여하는 컨소시엄이 구성되면 곧바로 사업자 선정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그해 7월 10일. LG텔레콤(대표 남용)과 하나로통신(대표 신윤식)이 그동안 각자 추진해온 동기식 IMT2000 컨소시엄을 통합, 그랜드 컨소시엄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컨소시엄에는 통신사업자, 대기업, 중소업체 등 1000여 업체가 참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통부는 당정 간담회와 경제정책조정회의에 이 내용을 보고했다.
정통부는 IMT2000 그랜드 컨소시엄에 대해 “비용절감 효과가 있고 매출액도 증대될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석호익 국장은 “이번에 양사가 전략적으로 제휴해 후발사업자들과 공동으로 통신망을 활용하고 공동마케팅에 나섬에 따라 (참여업체들의) 비용절감 효과가 있고 매출액도 증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석 국장은 이어 “후발 사업자 간 전략적 제휴를 통해 공동망, 공동마케팅 등으로 시너지 효과를 높여 비용은 줄이고 매출을 늘리면 국가도 도움이 된다”며 “동기식 컨소시엄 추진위가 출연금을 2200억원으로 공식적으로 건의해오면 관계부처와 협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해 7월 18일. 그랜드컨소시엄은 동기식 사업자의 주파수 할당 대가(출연금)를 2200억원으로 삭감해줄 것을 공식 건의했다.
그해 7월 25일. 정보통신부가 IMT2000 동기식 사업자 선정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정통부는 그랜드컨소시엄의 건의를 받아들여 동기식 사업자의 출연금 납부와 관련해 총액(1조1500억원)은 현행대로 유지하되, 구성주주가 허가서 교부 전에 초기출연금(2200억원)을 납부하고, 잔액(9300억원)은 허가받은 법인이 15년간(주파수 이용기간) 매년 전년도 매출액의 3∼1% 범위 내에서 분할 납부하도록 했다. 이후 사업자 선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정통부는 8월 3일 오전 9시부터 14층 대회의실에서 IMT2000 동기식 사업권 허가접수를 시작했다. 심사총괄은 석호익 정보통신지원국장이 담당하고 접수반장은 이기주 통신기획과장(방통위 기획조정실장 역임, 현 한국인터넷진흥원장)이, 홍진배 사무관(현 미래창조과학부 통신이용제도과장)과 직원 3명이 반원으로 일했다.
동기식 IMT2000 그랜드 컨소시엄은 4일 오전 임병용 LG텔레콤 상무(현 GS건설 사장)와 이종명 하나로통신 전무(현 명지대 교수)가 정통부에 사업권 허가신청서를 접수했다. 단독이었다. 허가신청 서류는 화물용 엘리베이터로 운반했다. 접수반은 신청서와 서약서, 주파수할당신청서, 사업계획서, 요약문과 본문 등을 확인해 접수증을 발급했다.
심사위원은 정보통신 관련 학계와 연구계 전문가들 중 영업과 기술 분야 각 7명씩 모두 14명으로 구성했다. 영업 부문은 강영무 동아대 교수, 고일상 전남대 교수, 김병호 국민대 교수, 박동규 한양대 교수, 안형택 동국대 교수, 유진수 숙명여대 교수, 전성훈 서강대 교수 등이었다. 기술부문은 김봉태 ETRI 박사, 김석태 부경대 교수, 김철성 전남대 교수, 김회린 ICU 교수, 박동선 전북대 교수, 정대권 항공대 교수, 조국현 광운대 교수 등이었다. 계량평가위원은 김춘성 삼경회계법인, 문성태 신우회계법인 회계사가 담당했다.
정통부는 8월 20일부터 24일까지 5일간 천안 정보통신공무원교육원에서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한 상태에서 숙식을 하며 심사에 착수했다. 심사위원들은 3개 심사항목별로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60점 이상 총점 70점 이상인 경우 적격으로 판정했다.
그해 8월 25일 오전 10시. 정통부는 이날 정보통신정책심의회(위원장 곽수일 서울대 교수)를 열고 LG텔레콤이 주도하는 동기식 IMT2000 그랜드 컨소시엄을 최종 사업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정통부는 그랜드 컨소시엄이 3개 심사사항별로 100점 만점 기준에 60점 이상, 총점 70점 이상을 얻어 허가대상 법인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주요 심사항목은 △사업계획의 타당성 및 설비규모의 적정성(76.960점) △재정적 능력 및 주주구성의 적정성(78.203점) △기술개발 실적과 계획 및 능력(84.960점) 등이었다. 총점 102점 만점에 81.133점을 획득했다.
출연금 규모는 그랜드 컨소시엄 측이 제시한 1조1500억원으로 확정했고 일시출연금 2200억원을 우선 납부한 후 나머지 9300억원은 향후 15년 동안 매출액의 1~3% 범위 내에서 무이자 분할납부하도록 했다.
IMT2000 동기식 사업자 선정의 대장정은 곡절 끝에 막을 내렸다. 당시 석 국장을 비롯한 실무자들은 공정성과 객관성, 투명성을 위해 언행을 각별히 조심했다. 사업자 선정과정은 모두 공개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이런 이유로 작은 잡음도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업자 선정이 막을 내린 후 석 국장은 우정국장과 전파방송관리국장을 지냈고 사업자 선정까지 잘 끝냈음에도 그해 9월 6일 인사에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파견발령이 났다. 의외의 인사였다. 많은 이가 이유를 궁금해 했다.
석 국장은 “일본 NTT도코모의 60억달러 SK텔레콤 투자 제의를 반대했고 이후 투자건이 무산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증언했다.
당시 청와대 L 경제수석은 석 국장에게 “NTT도코모의 투자를 도울 방법을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이는 필요하다면 IMT2000의 기준을 변경해서라도 NTT도코모의 투자를 가능하게 하라는 지시였다고 한다. 석 국장은 거듭된 경제수석의 요구를 거절했다. 급기야 경제수석이 석 국장을 향해 휴지통을 던지는 사태로 번졌다. 경제수석에 밉보인 그는 미운털이 박히고 말았다.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이었다.
CDMA 방식인 IMT2000 동기식 사업은 5년 후인 2006년 통신 업계를 강타한 초대형 태풍으로 변했다. 2006년 7월 4일 LG텔레콤은 동기식 사업 포기를 선언했다. 정통부는 7월 19일 사업허가를 취소했다. 남용 LG텔레콤 사장(LG전자 부회장 역임)은 사업권 포기에 따른 책임을 지고 퇴진했다. 동기식 IMT2000은 황금알을 낳은 거위가 아니라 기업에 엄청난 부담을 준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기술세계의 벽은 높기만 했다(이 내용은 추후 소개하겠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