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 40년...미래 40년]대덕을 만든 사람들

최순달 전 체신부 장관, 한필순 전 원자력연구소장, 채영복 전 과기부 장관, 정광화 현 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이정순 전 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장인순 전 원자력연구원장, 백홍열 현 국방과학연구소장 등 517명.

최순달 전 체신부 장관
최순달 전 체신부 장관

이들은 1968년부터 1990년 국내 연구소에 영구 귀국한 해외유치과학자 수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대덕연구단지에 정착한 뒤 산업계와 학계로 퍼져 나가 우리나라 과학기술 기반을 다졌다. 일부는 지금도 현역에서, 일부는 원로자리에서 대덕을 이끌고 있다.

1970년대 이후 1990년까지 대덕연구단지가 조성되면서 각지에서 인재가 몰려 들었다.

해외유치과학자를 비롯한 국내 대학 출신 과학기술 인재와 당시 과학기술처 공무원이 똘똘 뭉쳐 대덕을 일궜다.

최순달 전 장관은 대구 출신으로 서울대를 나와 미국 버클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전기통신연구소장·전자기술연구소장(ETRI 전신) 등을 지냈다. KAIST 교수 시절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인공위성을 만들어 쏘아 올렸다.

한필순 전 소장은 평남 출신으로 1970년 국방과학연구소 무기 개발을 시작했다. 1984년 한국원자력연구소장을 맡아 최장수 재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형 원자로와 한국형 핵연료를 개발해 `원자력의 대부`로 꼽힌다.

정광화 원장은 지금도 왕성한 현역 활동을 하는 여성 해외유치과학자다. 우리나라 미사일의 대부로 불리는 정규수 박사(ADD 출신)와 같이 미국 스탠퍼드대를 나온 부부 유치과학자다.

대덕의 초석을 놓은 인물 가운데 오원철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빼놓을 수 없다. 오 전 수석은 황해도 출신으로 박정희 대통령 당시 경제수석 겸 중화학공업기획단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대덕단지 기반공사 추진 업무를 담당했다.

일화도 있다. 1971년 서울 워커힐호텔 인근 한강 백사장에서는 20~30대 젊은이들이 며칠째 하루종일 자갈만 던지고 있었다. 당시 한필순 ADD 병참물자개발실장과 `W 이론`의 창시자인 이면우 KIST 연구원 겸 서울대 교수, 김지학 서울대 사범대 교수 등이 가장 멀리 날아가는 수류탄 유형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시뮬레이션으로 금방 답이 나오지만 당시만해도 모두 몸으로 연구를 했다.

한국형 원자로 탄생도 마찬가지다. 당시 한필순 소장은 영광원전 계통설계 팀이 미국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사로 기술을 배우러 떠나는 환송식장에서 “실패하면 돌아오지 말라”며 `대한민국 만세` 3창을 외쳐 보는 이의 심금을 울렸다.

TDX 혈서 건이나 CDMA를 개발한 양승택 전 정통부 장관과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임주환 전 ETRI 원장, 한기철 전 ETRI 소장 등 수백명이 R&D에 매진해 IT강국 코리아 기틀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KAIST 출신은 삼성 플래시 메모리 개발을 주도했다. 석사 기준으로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을 비롯한 신유승, 서강덕, 정칠희, 전영현 씨 등이 모두 전기 및 전자공학과와 물리학과 인재들이다.

이헌규 현과학기술총연합회 사무총장도 KAIST 출신으로 대덕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반 조성과 인프라는 과기처 대덕단지관리사무소가 주로 수행했다.

서정만 초대소장을 비롯한 김영중, 장수영, 이상강, 곽종선, 한기익, 이상태, 김지호, 박상동, 이춘섭, 김석권, 차주호, 유창영, 이상목, 송봉현, 강상식, 이강국, 김대석 씨 등이 1998년까지 차례로 소장을 맡았다.

이상목 소장은 현재도 미래창조과학부 제1 차관을 맡아 과학기술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