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시장 2위인 SK하이닉스가 최근 삼성전자에 앞서 차세대 제품을 선보이는 `사고`를 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서는 과거 황창규 전 사장 재직 시절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를 수율에서 앞섰던 전례를 떠올리기도 한다. SK하이닉스가 근래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는데는 올초 삼성전자 출신 패키지·제조 최고 전문가와 KAIST 출신 연구소장 등을 영입한 덕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내부에서는 다시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SK하이닉스는 지난 6월 삼성전자를 앞질러 25나노미터 기술을 적용해 8Gb LPDDR3 D램을 세계 처음 출시했다. 이어 지난달에는 6Gb LPDDR3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4단으로 쌓아 3GB 용량을 한 패키지로 통합한 것이다. 내년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반도체 분야 최고 권위 학술대회인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에서는 128Gb/s 동작 속도를 내는 기술을 발표할 예정이다. 만년 2위의 설움을 겪었던 SK하이닉스가 SK그룹에 편입되면서 갑작스럽게 성과를 냈다고 보기에는 이례적이다.
특히 아이폰5S에 삼성전자보다 한발 앞서 LPDDR3를 공급하면서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은 자사 디자인 맞춤형 패키지를 별도로 주문하는데 샘플을 제공하는 시기가 삼성전자에 비해 SK하이닉스가 한달씩 앞서고 있다”고 귀뜸했다. 애플은 삼성전자와 소송전을 벌이는 와중에 아이폰5S 등 플래그십 모델의 경우 삼성전자에 모바일 D램을 주문하지 않는 방식으로 견제해왔다. 대안인 SK하이닉스가 수혜를 받으면서 애플의 까다로운 요구에 맞춰 패키지를 개발하고 기술력도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최근 삼성전자를 위협할만큼 경쟁력을 확보한 비결에는 설계·제조 전문가들의 핵심적인 역할이 있었다는 전언이다.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인 박성욱 사장은 메모리 설계 전문가로 SK하이닉스를 세계 2위 메모리 업계로 올려놓은 일등 공신이다. 오세용 제조부문장 사장은 지난 2005년 삼성전자 재직 시절 초일류 핵심 기술인에게 주는 상인 삼성 펠로우에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반도체패키지학회장을 지내기도 했던 오 사장은 SK하이닉스로 자리를 옮긴 후 삼성전자 뛰어넘기 프로젝트를 추진, 조기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올해 초부터 SK하이닉스는 고사양 패키지 물량을 글로벌 대기업 협력사에 이전하는 등 경쟁력 극대화 전략을 펴왔다.
사정이 이쯤되자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불편한 심기를 넘어 최근 SK하이닉스 견제론마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소식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시장 1위의 힘을 앞세워 SK하이닉스를 압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면서 “나아가 삼성전자 출신 인물들에 대한 서운함과 동시에 내부 인맥 단속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