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에 올랐다. 한계령에서 시작해 서북능선을 타고 대청봉을 밟았다. 대청봉까지 오른 것은 16년 만이었다.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산 전체를 휘둘러 계단이 많이 생겼고 등산로는 거의 전 구간이 팍팍한 돌길로 포장돼 있었다. 특히 대청봉 부근은 아주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중청대피소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구간은 원래 평탄하고 확 트인 흙길이었으나 지금은 바위와 돌계단이 뒤엉킨 인공 바위능선으로 변해 있었다. 1700m 고지에 바위를 공수해 바위산을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일견 대단한 일로 보인다. 하지만 등반객 입장에서는 공연한 짓이다. 쓸데없이 힘만 더 들게 하고, 산을 찾는 즐거움은 반감시켰다.
스포츠에서는 평균 속력을 `페이스(pace)`라고 한다. 댄스에서는 보폭, 조정경기에서는 배를 젓는 속도를 말한다. 수영이나 마라톤처럼 정해진 구간을 달리는 경기에서는 페이스 조절을 잘해야 승리할 수 있다. 일부러 오버페이스로 자신의 능력보다 빠르게 달리며 특정 선수가 우승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도 있다. 페이스 메이커라고 한다. 그만큼 스포츠에서는 페이스가 중요하다. 페이스를 조절하는 일이 승패를 좌우한다.
산행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코스를 완주하려면 페이스 조절을 잘해야 한다. 그런데 일률적인 보폭을 강요하는 계단은 이를 방해하게 마련이다. 한 걸음에 내디디기 어려운 높이의 계단은 오를 때나 내릴 때나 무릎에 큰 부담을 준다.
인터넷과 게임업계가 이런 저런 규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게임 중독법을 둘러싼 논란이 치열한 가운데, 본인 인증 과정을 거친 고객이라도 성인 콘텐츠를 보려면 매번 공인인증이나 휴대폰 인증 과정을 거치도록 하라는 여성가족부 요구를 네이버가 따르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힘들고 팍팍한 돌계단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된 셈이다.
물론 안전을 위해 반드시 계단이나 밧줄 등을 설치해야 하는 구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계단은 등반객을 지쳐 떠나게 할 따름이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