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보급형 스마트폰에 중국산 소재·부품을 잇따라 채택한다. 최근 베트남에서 카메라모듈·케이스 등 핵심 부품을 직접 생산하는데다 중국산 소재·부품까지 도입하면서 국내 협력사들의 압박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 중소·중견 업체의 삼성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어서 자칫하면 국내 소재부품 산업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최근 일리 등 중국 업체를 1차 벤더로 승인하고 보급형 스마트폰용 터치스크린패널(TSP)을 공급받기로 했다. 몇 달 전 중국 업체를 카메라모듈·케이스 공급 업체로 선정한 데 이은 후속 조치다. 향후 삼성전자는 보급형 스마트폰에 중국산 소재·부품 채택 비중을 늘려 가격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관계자는 “회사 내 제조 부서의 입김이 세지면서 후방 협력사 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특히 스마트폰 시장의 무게중심이 보급형 제품 쪽으로 바뀌면서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계속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 소재·부품 협력사의 어려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프리미엄 스마트폰용 소재·부품은 자체 생산 비중을 확대하고 있고, 보급형 스마트폰에는 중국산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물량 가뭄에 시달리는 국내 협력사들은 내년부터 중국 업체와 가격 경쟁까지 벌여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삼성전자는 내년 3월 베트남 제2 생산거점 타이응웬 공장을 본격 가동한다. 이곳에서는 카메라모듈·케이스·렌즈 등 핵심 소재·부품을 자체 제작해 자동화 공정으로 스마트폰을 생산한다. 생산 일정을 단축해 스마트폰 시장 변화에 즉각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삼성전자 협력사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중국 업체와 가격 경쟁에서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국내 협력사들이 받는 역차별이 적지 않다는 주장이다. 국내 협력사들은 대부분 삼성전자와 독점 거래하고 있는데, 중국 협력사는 삼성전자 외 여러 세트업체와 거래하면서 위험을 분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공식적으로는 협력사들이 경쟁 스마트폰 업체와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았지만, 실제 구매 조직에서는 독점 거래 업체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재고 측면에서도 국내 협력사들은 역차별 받고 있다. 국내 협력사는 불량 소재·부품을 대부분 폐기하지만, 중국 업체는 짝퉁 시장 등에 팔아 일부 재료비를 건질 수 있다. 이는 가격 경쟁력과 직결된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중국 업체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게 해준다면 국내 업체들도 가격 경쟁력을 훨씬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최근 삼성전자의 행보는 아쉽다”고 토로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