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문화로 읽다]일산화탄소 중독

#. CSI 그리섬 반장에게 어느 날 소포 하나가 배달됐다. 소포 안에는 범죄 현장을 묘사한 축소 모형이 들어 있었다. 일면 `미니어처 킬러`로 불리는 익명의 살인범은 자신이 저지른 현장의 모습을 그대로 축소시킨 미니어처를 제작해 범죄 현장에 남겨두는 연쇄살인범이다. 더욱 대담해진 범인이 앞으로 벌어질 살인 현장 모습을 그대로 미리 만들어 경찰에게 보낸 것이다.

[과학, 문화로 읽다]일산화탄소 중독

그리섬 반장을 비롯한 수사 대원들은 모형을 다각도로 분석한 끝에 간신히 동일 장소를 찾아냈다. 범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피해자로 변장한 경찰을 투입시킨다. 하루가 꼬박 지나도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일단 현장에서 철수하기 위해 경찰을 깨우지만 이미 숨을 거둔 상태. 알고 보니 소파 옆에 있던 벽난로에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안에 든 내용물이 불꽃 위로 쏟아지도록 하는 장치가 부착되어 있었다. 범인이 미리 넣어둔 목탄가루가 불꽃 위로 떨어지면서 발생한 일산화탄소 때문에 잠복 중이던 경찰이 숨졌다.

흔히 `연탄가스 중독`으로 대표되는 일산화탄소 중독은 탄소가 포함된 물질이 불완전 연소되면서 발생하는 무색, 무취, 무미, 비자극성 가스인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상태를 말한다. 연탄 사용이 줄고 불완전 연소를 줄이고 누출가스를 차단하는 보일러 제작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일산화탄소에 중독되는 환자 수는 급격히 감소했다.

최근에는 화재현장에서 구출된 사람이나, 히터를 켜 둔 채 환기가 되지 않는 자동차에서 잠을 자다가 일산화탄소에 중독되는 것이 문제되고 있다. 흡입된 일산화탄소가 산소 대신 헤모글로빈과 결합하여 산소가 각 조직으로 제대로 운반될 수 없기 때문에 저산소증이 생긴다.

원인을 알려면 체내 산소 운반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일산화탄소는 적혈구의 헤모글로빈(Hb)에 산소보다 250배 쉽게 결합한다. 따라서 헤모글로빈이 산소를 제대로 실어 나르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체내에 산소가 부족해지면 생체 세포에서 젖산을 생성하게 되어 혈액이 산성으로 변하고, 이는 호흡중추 등을 자극하여 호흡의 깊이, 호흡수, 심장박동수를 증가시켜 산소 부족을 보상하고자 한다.

보상 작용은 공기를 상대적으로 많이 호흡하여 산소부족량을 보충하고, 산소함유량이 저하된 혈액을 많이 순환시키며, 뇌의 혈관을 확장하여 많은 혈액이 흐르도록 조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보상작용은 산소농도가 16% 정도일 때까지만 효과가 있고, 이보다 낮은 농도에서는 생체적 보상이 불가능하여, 산소결핍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제 곧 겨울이다. 실내에서 난방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오랫동안 문을 닫아서 공기의 유출입을 막으면 실내 공기는 쉽게 오염된다. 기체의 비중이 무너지면 신체에 이상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지나친 난방이나 흡연 등을 삼가고 자주 창문을 열어 공기를 환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공기가 실내 깊숙이 들어오도록 창문을 활짝 열어보는 것이 어떨까.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