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한 콘퍼런스에서 여성들이 직면한 유리 천장을 깨뜨리자는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언론이 관심을 보인 주된 이유는 그녀의 대선 도전 가능성이었지만 동시에 여성들이 사회에서 부딪치는 `유리 천장` 이라는 것이 2013년 미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정치적 화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여성이 직면한 유리 천장은 창업계에서 더욱 심각하다. 2012년 비즈니스위크는 포천 500 기업 중 여성 임원의 비율이 16%인 반면, 흑자를 내고 있거나 주식 시장에 상장한 이른바 성공한 스타트업에서 여성 임원의 비율은 7.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트위터가 상장을 결정했을 때 회사 성과와 함께 언론이 주목하고 비난했던 것은 이사회나 고위 임원 중 여성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트위터로 인해 실리콘밸리의 `젊은 남성 중심 문화(young boys club)`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이는 창업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카우프만 재단에 따르면 오랜 경력의 벤처캐피털리스트 중 여성 비율은 10%가 되지 않으며 이는 결국 여성 창업자가 투자를 받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창업자와 투자자 간의 네트워킹과 커뮤니케이션 문화가 남성 중심적이기 때문에 여성 창업자에게는 극복하고 적응해야 하는 또 하나의 과제가 있는 셈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사정은 어떨까. 여성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벤처기업 중 여성이 창업한 비율은 2006년 4.1%에서 2012년 7.7%로 높아졌으나, 2012년 스타트업 게놈에서 조사한 실리콘밸리의 여성 창업 비율 10% 보다도 낮다. 한국 창업 생태계의 여성 친화도는 더욱 낮다는 말이다. 실제 국내 각종 경진대회나 심사 과정에서 여성 창업자에게 남성에게는 묻지 않는 결혼 여부, 남편, 아이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고 하니, 숫자 이면에 자리한 여성 창업자의 현실은 더욱 고단할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에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여성 창업을 지원하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현재 여성 창업자 대상 공간 지원이나 금리 우대 등 여러 가지 지원 프로그램은 당장 여성 창업자에게 필요한 부분을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 창업자가 갖는 근본적인 문제들은 바로 투자 기회에 대한 접근의 어려움, 전문가와 멘토에 대한 접근의 어려움, 그리고 사회적으로 `여성`이 아닌 `창업자`로서 존중과 인정을 획득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다. 정부와 민간에서 함께 이러한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양쪽을 연결할 수 있는 채널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어려움 중 상당 부분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과 문화에 기반한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를 바꾸어 나가기 위한 교육과 홍보도 필요할 것이다.
나아가 사회 전반의 인식과 문화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필수적인 것은 바로 성공 사례와 롤모델을 만들기 위한 여성들의 끊임없는 시도와 도전이다. 지난 10월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스타트업 네이션스 서밋에서 만난 레베카 황과 크리스티나 브로드벡이라는 두 여성은 창업계에서 스스로가 여성으로서 롤모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좋은 사례다. 그녀들은 최근 Rivet Fund라고 하는 일종의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펀드를 만들고 투자자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여성`에서 한계보다는 기회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남성 투자자와 여성 창업가가 겪는 상호 접근성의 한계가 이들에게는 여성 투자자로서 강점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시장 기회다. `여성`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창업에 있어서도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세계적으로 구매 의사 결정의 70%가 여성에 의해 이루어진다. GILT와 같은 쇼핑 관련 서비스는 물론이고 스카이프, 페이스북, 심지어 트위터도 여성 고객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재능과 열정을 겸비한 한국의 많은 여성들이 과감하고 끈질기게 `기회`에 도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박영은 은행권청년창업재단 D.CAMP 글로벌사업&투자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