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Growth 2.0]<42>두산중공업, RCP 개발로 한국형 원전에 방점

`APR-1400`은 한국형 원자로의 대표 모델이다. 1978년 국내 첫 원전인 고리 1호기가 가동한 이후 30여년 만에 확보한 모델이며 순수 국산기술로 만들어진 원전으로 평가받는다.

두산중공업이 국산화에 성공한 APR 1400급 원자로냉각재펌프
두산중공업이 국산화에 성공한 APR 1400급 원자로냉각재펌프

앞서 1000㎿급 한국형 원자로 OPR-1000 모델이 있었지만 1400㎿급 APR-1400이 진정한 원전기술 국산화로 평가받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 원전 수출 노형으로 지금은 일반인에게도 꽤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APR-1400도 그동안 일부 핵심기술은 해외에 의존하고 있었다. 원자로냉각재펌프(RCP)와 원전계측제어설비(MMIS)가 대표적이다. 두산중공업은 이 기술을 국산화해 신울진 1·2호기에 도입, 한국형 원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순도 100%…한국형 원전시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세계 원전 산업계에 악몽으로 다가왔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냉각재계통 고장이 원인이었다.

원자로냉각재계통은 원자로, 증기발생기, 가압기 및 RCP로 구성된 시스템으로 원전 운전과 안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핵심 설비다. 그 중에서도 RCP는 원자로를 거치면서 핵분열로 뜨거워진 냉각재(경수)를 증기발생기로 순환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대형 펌프로서 `원전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설비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RCP 국산화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1987년부터 원전기술 자립이라는 목표 아래 차세대 원전기술 개발, 원전기술 고도화 과정을 거치면서 비약적 발전을 거듭해 원전 강국으로 발돋움했지만 원전기술 자립도는 95% 수준에 머물렀다. 100%의 완벽한 한국형 원전을 보유하려면 RCP와 원전제어설비, 원전핵심코드의 국산화가 필수였다.

특히 RCP는 웨스팅하우스(미국), 케이에스비(독일), 아레바(프랑스), 플로서브(미국), 미쓰비시 중공업(일본), 안드리츠(오스트리아) 정도만이 자체 설계 및 제작을 이용한 공급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기술이전도 극도로 제한된 원전 핵심기기다. 그동안 국내에 건설된 표준형 원전에도 웨스팅하우스의 RCP가 사용돼 왔다.

RCP 개발은 2007년 시작됐다. `Nu-Tech 2012` 정부 과제로 국내 1400㎿급 원전에 적용 가능한 RCP를 포함한 미자립 기술 국산화 개발이 착수되면서다.

이 작업에서 두산중공업은 원전 주기기 전문 제작사로 개발 총괄을 담당했다. 두산중공업은 설계와 제작, 관련 핵심요소 기술 확보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 RCP 성능검증시험 설비 구축 및 시험 분야를 주관했다. 여기에 한국기계연구원, 한국전력기술 및 필로소피아, 경희대 등이 개발에 동참했다.

RCP 개발 과정은 2단계에 걸쳐 수행됐다. 개발기간만도 5년이 넘는 대장정이었다. 1단계에서는 설계요건을 수립하고, RCP 축소모델펌프를 설계·제작해 시험을 수행했다. 이를 기초로 원형 모델의 기본설계와 상세설계 정보를 수집했다. 2단계 작업에서는 실제 크기 RCP 제작 작업을 시작했다. 완성된 원형 RCP 모델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구축한 성능시험 설비에서 성능 및 내구성을 확인하는 각종시험을 수행, 모든 조건을 만족했고 개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APR-1400 모델의 한국형 RCP 개발에 성공했고 지금은 신울진 1·2호기에 설비를 설치 중이다.

◇제로에서 시작한 RCP 개발, 원전 수출장벽 허물다

RCP 개발은 단순히 원전 설비 하나를 국산화했다는 의미 이상이다. 품목으로 보면 하나의 설비지만 원전 1기에 네 개의 설비가 들어갈 정도로 원전에서 RCP 역할 비중은 절대적이다.

업계에서는 RCP 국산화에 따른 수입대체 효과만도 원전 2기 기준 13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부수적으로는 해외업체가 독점해 온 기술을 우리만의 모델로 극복해 경쟁력 저하 요인을 제거하고 수출장벽을 해소함과 동시에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안전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용량과 안전성이 강화된 신규 원전모델을 확보하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원전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RCP 개발은 맨바닥에서 시작한 사업이었다. 대형펌프와 관련된 이렇다 할 기초기술조차 없던 상황에서 RCP를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1400㎿급 원전에 요구되는 성능을 충족하면서도 특허를 피하려면 기존 신고리 3·4호기와 완전히 다른 설계를 시도해야 했다. 각종 부품의 형상은 물론이고 위치 및 지지대 구조물까지 모든 품목을 원점에서부터 새로 개발해야 했다.

RCP는 1336종의 품목과 7000여개 부품으로 구성되는 설비다. 여기에 고온·고압을 견디고 누수를 방지해야 하며 약간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조립 및 분해 시 이상이 없도록 해야 하지만 제작에서 현장 납품까지 잦은 분해 조립이 수행되는 설비 특성상 나사산 손상 우려가 있었다. 두산중공업은 각 부품을 모듈 형태로 설계해 분해 조립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이를 이용해 현장 납품 전까지의 손상 확률을 대폭 낮췄고 현장 정기점검 시 분해 작업자의 피폭시간도 줄일 수 있었다.

첫 시제품 제작을 완료한 두산중공업은 500시간 시험을 거쳐 성능과 내구성을 입증했다. RCP 개발과정에서 확보한 대용량 펌프의 수력설계, 건전성 평가, 성능보증 평가기술은 산업 전반에 사용되는 펌프 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다. 또 계통연계 사항, 계통적합성 평가 및 성능보증 능력을 확보해 원전 계통 주기기 전체의 성능 보증을 국내 기술로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차세대 원전 개발 역시 국내 기술로 할 수 있는 인프라를 확보함과 동시에 즉각적 유지보수 체계를 갖출 수 있음을 의미한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5년 4개월간의 장기간 개발으로 국내 원전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는 RCP를 개발했다”며 “이번 개발로 국내 기술력이 상당 수준임을 확인하고 유체기체에 종합적인 기술력을 상승시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신울진 1·2호기를 시작으로 한국형 원전 수출 불 지피다

신울진 1·2호기는 순수 국내기술로 완성된 첫 대용량 원전이다. 두산중공업은 이곳에 미자립 원전 핵심기술이었던 원자로냉각재펌프(RCP)와 원전계측제어설비(MMIS)를 국산화해 적용했다.

신울진 원전에 설치 중인 RCP는 높이 약 11m, 무게 155톤에 이르는 초대형 펌프다. 원전 1기에 넉 대의 RCP가 초당 30.7톤의 냉각재를 순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MMIS는 원전의 두뇌·신경망으로 운전·제어·감시·계측 및 비상 시 안전 기능 등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최신 컴퓨터를 활용한 디지털과 인간공학 기술의 융합체다. 신울진 원전 설치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국내외 신규원전 및 가동원전에 적용할 예정이다.

원전 핵심기기 개발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두산중공업의 다음 목표는 신울진 원전 설치기기의 안전한 운영이다. 개발과정에서 수많은 실증시험 및 검증을 거쳤지만 실제 원전 운영에서는 혹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시행착오에 대비하고자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 신울진 원전이 정상적으로 가동해야 1400㎿급 한국형 원전의 진정한 레퍼런스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유지보수 단계에서 얻게 되는 기술 노하우와 정보를 밑거름 삼아 향후 명품 원전 건설 및 수출 경쟁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한동안 얼어붙었던 원전 시장은 중동 등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대용량 시장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두산중공업의 신울진 원전 수주실적은 원전 수출시장 개척 측면에서 시기적으로 긍정적이다.

안으로는 신고리 5·6호기에 한국형 원전모델 공급계약이 예상되며 밖으로는 미국에 건설되는 AP1000 원자로 및 증기발생기 출하를 목표로 제작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두산중공업은 원전 시장에서 그동안 핵심기술을 독점해 온 해외기업과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또 MMIS와 RCP 등 국산화 기술에 기반을 두고 차세대 원전모델 개발에도 역량을 쏟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