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베트남에는 없는 것도 없고, 있는 것도 없다"

김진환 영림원소프트랩 베트남 하노이 현지법인장

베트남 하노이에 살면서 자주 하게 되는 말이 “베트남에는 없는 것도 없고, 있는 것도 없다”다. 베트남에서 필요한 무언가를 찾으려 하면 있기는 있지만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고, 그 품질이 아주 떨어지거나 아니면 아주 초고가의 물건만 있다. 이러한 것은 IT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베트남에서 제일 많이 팔린 회계 소프트웨어(SW)가 있다.

김진환 영림원소프트랩 베트남 법인장이 5일 베트남 하노이 그랜드플라자호텔에서 베트남 ERP 시장 현황과 고객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김진환 영림원소프트랩 베트남 법인장이 5일 베트남 하노이 그랜드플라자호텔에서 베트남 ERP 시장 현황과 고객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사용 기업이 5만개가 넘고,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회계SW는 단순한 재무제표 작성용이다. 실질적인 회계의 관리적 기능을 찾아보기 힘들다. 외부용 보고서로는 완벽하게 지원돼 심지어 회계 감사 보고서까지 출력된다. 그러나 내부 관리자용 보고서는 관리자의 요구가 있을 때 수작업으로 만들어서 보고해야 한다. 입력되는 정보가 적어서 그 작업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베트남 회계 실무자들은 매우 만족하고 있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기능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작업 보고서도 다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만 보면 베트남 회계 담당자들은 요구 수준이 아주 낮아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실제 프로젝트에 들어가면 완전히 달라진다. 그동안 수작업으로 하던 모든 보고서를 모두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다. 그런 기능이 없으면 프로그램을 쓸 수 없다고까지 한다. 심지어는 인터넷이나 책에서나 있음직한 이론적인 내용을 가지고 요구를 하기도 한다. 해외 비즈니스인텔리전스(BI) 솔루션들이 보여주는 화려한 사용자인터페이스(UI)도 요구한다. 외국 솔루션에 대한 기대다.

이러한 점이 베트남 시장 진출에 있어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베트남은 아직 소득 수준이 높지 않다. 2012년 기준 1600달러에 불과하다. 하지만 핸드폰 3G 보급률은 148%에 이르고 인터넷 사용자 수는 3100만명이다. 따라서 많은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이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IT 용어에 대한 지식이나 기술에 대한 눈높이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다만 재정적 지원이 따라주지 못 할 뿐이다.

베트남 IT 시장을 보고 있으면 많은 기회가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기회를 실제 수익으로 연결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에서 아무리 좋은 SW일 지라도 베트남에 오면 현지 업체와 치열한 가격 경쟁을 해야 한다. IBM, HP, SAP, 오라클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글로벌 기업뿐 아니라 이들 제품을 서비스하는 현지기업들과도 싸워야 한다. 국산 SW는 포지셔닝이 쉽지 않다.

베트남 시장에 진출하고 싶다면 먼저 타깃팅(Targeting)과 포지셔닝(Positioning)을 명확히 해야 한다. 또 솔루션 자체의 기능은 수요자의 눈높이와 맞아야 한다. 아무리 현지 제품보다 좋다고 주장해도 베트남 기업들의 수요와 맞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이들이 필요로 하는 성능이 어느 수준인지, 기대하고 있는 가격은 얼마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또 베트남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세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다른 곳에서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베트남만의 상황으로 지사 설립 1년 만에 철수한 글로벌 SW 기업도 많다. 분명 솔루션 자체는 아주 훌륭하지만 베트남과는 맞지 않았고 수정을 하기에는 너무나 큰 투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베트남 SW 시장은 아직 만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코 접근하기가 쉬운 시장도 아니다. 단기간에 승부를 보려는 생각보다는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고, 초기의 대규모 투자 보다는 베트남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철저한 준비 속에 투자를 늘려간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