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너지기구는 2030년까지 세계 에너지소비량이 지금의 40%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가운데 한국을 포함한 중국, 인도 등의 아시아지역 에너지수요는 35% 수준을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흥개발도상국들의 경제성장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전력분야는 석유화학 이후 우리나라가 집중해야 할 대형 수출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건설업계의 발전 부문 해외 수주실적은 크게 늘어 이제 석유가스 부문이 역전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안정적인 설비와 세계 최고 수준의 무정전 기술 등을 무기로 개도국 빅 마켓으로 부상하고 있는 전력시장에서의 코리아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성장기에 들어선 해외 전력시장 진출
2010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전력 역사에 큰 획을 그을 희소식이 있었다. 한국전력 컨소시엄의 UAE 원전 수주가 그 주인공이다. 1400㎿급 한국형 원전 4기를 건설하는 것으로 총 공사기간 10년에 사업규모 400억달러에 달하는 대공사다.
UAE 원전수주는 신흥국 전력시장의 규모와 미래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원전 시장은 잠시 침체기를 보내고 있지만 석탄화력과 LNG복합화력 프로젝트가 줄을 이으면서 전력시장은 활황을 계속하고 있다. 알제리, 인도, 이라크, 미얀마 등 경제성장 사회인프라 확보 차원에서 발전소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국가들 사이에서는 조단위의 발전 프로젝트가 나오고 있고, 이를 수주하기 위한 전력선진국들의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과거 국내 기업들의 해외 전력시장 진출은 발전소 건설에 참여하거나 터빈, 보일러와 같은 주기기를 공급하는 선에서 머물렀다. 하지만 최근에는 발전소 건설 프로젝트에서 더 나아가 실제 운영을 통한 전력생산, 판매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현지에서 전력을 생산해서 판매하는 전력수출 비즈니스 모델을 정착시키고 있는 셈이다.
해외 현지에서 전력생산 및 판매 비즈니스 부문에 먼저 도전장을 던진 곳은 발전공기업이다. 과거 한국전력시절부터 오랜 기간 동안 발전소를 운영해 온 만큼 그 노하우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다. 이들이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던 것은 전력시장구조개편 이후 전력시장에 민간기업이 참여하고 장기적으로 신규 발전소 증설 여지가 줄어들면서다. 특히 정부가 전력수급 대책의 기조를 공급능력 확대에서 수요관리로 선회한 만큼 지속성장을 위해선 해외시장으로의 영역확대가 필요하다.
발전공기업들의 해외시장 개척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6년 한국중부발전이 해외 유수 기업들을 제치고 수주에 성공한 인도네시아 찌레본 발전소는 사실상 해외 전력시장 진출 최초의 사례다. 지난해 준공을 완료해 현재 가동 중인 찌레본 발전소는 국내 표준형 석탄화력발전 기술이 사용된 설비여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발전소 운영 및 유지보수 사업으로 해외 전력시장에 진출하는 사례도 있다. 한국남부발전은 요르단 알 카트라나 발전소 운영 및 유지보수(O&M)사업을 체결했다. 이 사업은 계약금 2억4500만달러, 사업기간 25년의 대규모 프로젝트다.
새해 들어서는 원전 부문에서도 제2의 수주 소식이 기대되고 있다. 베트남과 사우디아라비아, 핀란드가 제2 원전 수주국가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한전은 지난 11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국내 건설, 엔지니어링 기업들과 `사우디 원전 시공 현지화 로드쇼`를 개최했다. 사우디 정부에서 요구하는 `원전 밸류 체인` 구축의 협력 방안이 도출이 목적이었다. 화석연료에 100% 의존하는 사우디는 2032년까지 총 18GW 규모의 원전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해외 전력시장 개척 플레이어가 늘어난다
그동안 해외 전력시장 진출은 발전공기업들의 전유물 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민간발전사들은 물론 건설사들까지도 발전소 운영 및 전력판매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민간발전사 해외진출 사례로는 포스코에너지의 인도네시아 부생가스발전소가 대표적이다. 설비용량 200㎿ 규모의 이 발전소는 포스코가 찔레곤시에 건설한 일관제철소에서 나오는 부생가스를 원료로 사용한다. 또 다른 민간발전사인 GS EPS는 2012년에 중국에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준공했다. 설비규모 30㎿로 목화줄기와 나무껍질 등을 연료로 사용하고 하루 3만 가구가 사용하는 전력을 만들어낸다.
해외 전력시장에 진출하는 건설사들로는 발전플랜트 시장에서 강세를 보였던 대우건설과 전통 강호인 대림산업, 신흥강자 현대엔지니어링과 삼성엔지니어링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 대다수는 해외 발전소 건설 프로젝트에서 설계·시공·조달(EPC) 사업을 수주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했지만 지금은 여기에 발전소 운영 수익을 더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EPC 사업 수주를 통해 건설·설비설치 공사대금을 받고 자재 공급 차액으로 수익을 내던 방법에서 사업 자체를 기획하고 투자를 통해 지속적인 지분 수익을 챙기는 방식으로 지속적인 수익창출을 노리는 셈이다.
국내 발전사들과 건설사들이 해외 전력시장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항시 수요가 있다는 점 때문이다. 업계는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로 이어지는 신흥국 라인에서의 전력부족현상이 한동안 계속되고 그에 따른 전력수급 요구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때문에 현지 발전소의 운영 및 전력판매에 대한 지분을 확보하는 것은 안정적인 캐시카우를 확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국내 전력시장은 온실가스 감축과 국토면적, 수요감축 정책 등 여러 측면에서 성장이 한계에 와 있는 상황”이라며 “신규 사업을 통한 성장을 위해서는 해외 전력시장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소박스]해외 전력시장 진출 내실 챙긴다
발전사와 건설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해외 전력시장 개척에 열을 올리며 수주실적 면에서 성과를 올리고 있지만, 긍정적인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글로벌 경기 불황으로 세계 유수 사업자들의 관심이 전력 분야에 쏠리면서 과열경쟁과 무리한 사업 추진으로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때로는 현지 협력사업자의 일방적인 사업 포기, 미진한 진행 등으로 사업을 철수하기도 했고, 입찰시장에서는 같은 그룹사내 기업들이 하나의 입찰에서 경쟁하는 모습까지 연출되기도 했다. 해외전력사업 진출이 외적 성과 중심으로 맞춰지다 보니 발생한 부작용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외적 성과주의는 점점 지양되고 있다. 과거에는 저가수주 사업이라도 일단은 따고 보자는 주의였지만, 저가수주가 곧 손실로 다가와 실적에 악영향을 주는 사례가 늘면서 저가경쟁 입찰은 사업대상에서 제외한다. 조금은 어렵더라도 새로운 지역에서의 신규 프로젝트를 발굴해 제대로 된 가격에 사업을 진행하는 게 요즘 추세다.
해외 전력시장 진출 지역이 넓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지금까지 해외 전력시장의 텃밭은 동남아시아와 중동이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의 경쟁이 과열되면서는 사업자들은 아프리카, 남부, 동유럽 쪽으로 시야를 넓히고 있다.
한국동서발전이 해외사업에 대한 투자심의 프로세스와 사후관리를 고도화한 자체적인 출자관리 모델을 수립하는 등 사업자 사이에서는 투자사업 리스크의 검증체계를 갖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일찌감치 해외사업에 나서면서 안정권에 접어든 한국중부발전은 핵심 지역인 인도네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태국, 파키스탄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새해에는 발전사들의 해외 전력시장 개편작업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정부 차원에서 무분별한 해외사업을 점검하고 필요한 부분은 통폐합하는 등 저면 재정비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특히 발전 공기업들은 현재 진행 중인 해외 사업에 대한 내부 감사 및 사업성 재검토를 벌인 뒤 사업 완료 가능성 및 수익성이 높은 사업만 추려내 내실을 기할 예정이다.
[소박스]해외 전력시장, 대중소 동반성장의 해법
수조원대에 이르는 해외 전력사업은 그 규모만큼이나 유관 산업 부양 효과 또한 뛰어나다. 특히 수만 개의 자재와 부품, 기기들이 사용되는 발전소 특성상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 진출하는 사례가 많다. 때문에 사업 수주과정에서 대기업들은 협력중소기업들로 이루어진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일이 다반사다.
때로는 대기업이 협력 중소기업들에게 해외사업 정보를 공유하고 관련 역량배양을 위한 인력양성을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경우 협력업체들을 위한 해외 경쟁력 강화 교육을 진행한다. 이 교육은 협력사들이 실질적으로 해외진출 후 사업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해외법인과 지사 설립 방법부터 세무금융 관련 법률, 노무관리 전략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해외 전력시장의 대중소 동반진출은 중소기업의 매출 신장은 물로 해외 판로 확보에 새로운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다. 중부발전은 인도네시아 찌레본발전소 사업을 통해 현지 사업자와 국내 중소 발전정비 업체가 170억원 규모의 장기계획예방정비 계약을 체결하는데 가교역할을 했다. 이를 기점으로 중부발전은 2008년부터 총 1500억원 규모의 해외동반진출 성과를 달성했다. 남부발전은 요르단 알 카트라나 발전소 O&M 사업을 진행하면서 국내 중소기업이 개발한 발전소 관리시스템을 도입해 새로운 시장 기회를 열어주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전이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현지법인에 중소기업 해외 상설 홍보관을 마련해 해외시장 개척을 지원 중이다. 상설 홍보관에서는 33개 국내 전력 전문 중소기업들의 제품에 대한 전시·홍보가 이뤄진다.
발전 업계 관계자는 “해외 전력사업은 발전소 건설은 물론 유지보수시에 많은 자재와 장비, 인력 등이 필요하다”며 “현재 제품보다는 기술력과 신뢰성이 있는 국내제품을 쓰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한 만큼 자연스럽게 동반진출이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주요 해외 전력시장 진출 사업 현황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