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제조업 로드를 가다]중국-②선전·광저우, 가난한 어촌이 세계 스마트폰 중심지로

지난 1978년까지만 해도 중국 대륙 최남단의 홍콩을 마주보는 가난한 어촌 마을 바오안(寶安)현은 밥벌이라곤 배를 타거나 농사를 짓는 게 전부였다. 홍콩에서 밀수품을 들여와 팔면 이윤은 많이 남았지만 위험 부담이 컸다. 이 작은 지역이 1979년 갑자기 주목받기 시작했다.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한 덩샤오핑은 가장 먼저 바오안현을 선전(深川)시로 격상시키고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1981년 부성급 시로 승격됐고, 1988년부터는 성급 경제관리를 받고 있다. 만약 오는 2020년 홍콩과 합병하면 세계 3위 국제도시가 된다. 홍콩과 가깝고 금융 거래가 자유로운 이 곳에 사람이 몰리는 건 당연했다. 특히 문화대혁명 이후 쏟아져 나온 대학 졸업생들이 앞다퉈 선전으로 향했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 중심지로 부상

선전 시내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빈하이(濱海)대로와 선난(深南)대로 주변 중심가에 들어서면 삼성전자·소니 등 글로벌기업들의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양 대로변으로 콩카(KONKA), ZTE 등 중국 TV·스마트폰 업체 본사도 위치해 있다. 서쪽으로 이동하면 선전과 둥관 중간쯤에 화웨이 캠퍼스가 펼쳐져 있고, 최근 인기몰이 중인 현지 스마트폰 업체 오포(OPPO) 본사도 있다. 그 인근에는 9개동 규모의 대만 폭스콘 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반대편 동쪽으로 30~40분여를 달려 용강산업단지에 들어서면 자사 직원을 위한 유치원, 초중고교까지 갖춘 거대한 비야디(BYD) 본사와 캠퍼스가 있다.

“스마트폰 관련 부품 업체는 품목별로 100여개라고 보면 됩니다.” 중국 현지에서 스마트폰 부품 영업을 하고 있는 한 직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워낙 업체가 많아 셀 수도 없고 이름도 다 알 수 없다. 기술이 가장 어렵다는 반도체 역시 비슷했다. 화웨이와 ZTE 반도체 자회사도 이 지역에 있고, 스프레드트럼·락칩·올위너 같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업체도 선전에서 출발했다. 오랜 기간의 노하우가 필요한 아날로그반도체 역시 중국 업체들이 저렴하게 공급하면서 페어차일드·인피니언 등 세계 유수의 기업이 두 손을 들었다는 후문이다. 중국 내 15~20위권 스마트폰 업체인 위신의 왕샤오얀 사장은 “스마트폰을 개발하고 제조하는데 필요한 모든 인프라가 선전에 몰려 있다”고 설명했다.

선전의 성공 비결은 간단했다.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외주 공장을 발빠르게 유치한 덕분이다. 돈을 벌기 위해 중국 각지에서 몰려든 인력들이 폭스콘·비야디의 외주 가공 공정에서 쌓은 노하우는 이 지역 전자제품 업체들로 퍼져나갔다.

지금도 대다수 현지 업체의 임직원 평균 연령이 40대를 넘지 않는다. 이민자의 도시답게 유학파도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다. 우수 인재가 쉽게 충원된다. 실제로 이 지역 토박이는 전체 인구의 10% 이하다.

고향을 떠나온 젊은이들은 휴대폰도 왕성하게 소비하고 있다. 중국은 각 성마다 전화요금 체계가 다르고 시외전화요금이 비싸 선전에서는 휴대폰을 2개씩 쓰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홍콩과 가까운 뤄후구와 푸톈구 주변부터 큰 상권이 형성됐다. 푸톈구에는 스마트폰 판매점이 총집결한 화창베이 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공장, 기술, 소비 등 삼박자가 갖춰졌다.

최근에는 인터넷 판매가 더욱 활성화되고 샤오미가 성공을 거두면서 스마트폰 제조업체 수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ZTE 등이 자사 출신 벤처기업에 자금을 투자하면서 전자산업 인프라는 더 탄탄해지고 있다.

◇광저우, 전 세계 짝퉁과 최고 디스플레이 기업의 집결지

“런타이두어(人太多).” 중국사람이 입버릇처럼 한다는 이 말은 `사람이 너무 많다`는 뜻이다. 주말 광저우(廣州) 꾸이화강(桂花鋼) 이면도로는 차와 사람이 어지럽게 뒤엉켜 질릴 정도다. 꾸이화강은 전 세계에서 가짜 명품, 이른바 `짝퉁`을 가장 많이 판매하는 곳이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짝퉁의 80%가 광저우산(産)이다.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2배 정도 면적, 최소 5층 규모 건물 8~9동에 짝퉁 판매점이 진열장을 갖추고 번듯하게 입점했다.

인파를 벗어나 동쪽 외곽으로 나가면 거리에 사람을 보기 힘든 공단 지대가 나온다. 첨단기술산업개발구에 LG디스플레이와 협력업체들이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다. TV업체인 스카이워스, 콩카, TPV가 광둥성 선전, 둥관, 푸칭에 몰려 있어 물류비·제조비 절감을 위해 진출했다. 보안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하는 LCD 공장과 짝퉁 명품이 공존하는 곳이 광저우다. 사람이 많고 소비력도 높은 지역, 기업으로서는 탐낼만한 시장이다.

◇`차이나 드림`에도 불구하고 점점 어려운 한국 제조업체들

강희방 선전 한인상공회장은 “5년 전에 비해 한국인이 3만명에서 1만5000명 정도로 줄었다”며 “지난해 초 남성전자가 용강 지역 공장을 매각하고 철수를 결정하면서 이제 제조업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예전 선전 지역에 거주하는 한국 사람은 제조업체 운영자나 종사자가 많았다. 하지만 완구, 이쑤시개 공장이 문을 닫았던 것처럼 카오디오, 인쇄회로기판(PCB) 등 전자제품 업종도 중국 업체에 밀려 철수했다. 14억 인구의 넓은 시장만큼 경쟁자도 많았다.

남아 있는 한국인들도 한국 기업의 법인 파견자나 서비스업·문화사업 종사자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 시장을 외면할 수는 없다. 선전에서 10여년간 일해 온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은 중국 현지 업체들의 구매선을 찾는 것조차 어려워한다”며 “현지에서 오랫동안 상주하면서 알음알음으로 채널을 알아보는 수밖에 없지만 한국 업체들은 대부분 인내심이 없다”고 설명했다. 중국인의 관점에서 중국을 보라는 조언도 곁들였다. “물량 보장을 해주지 않는다던가, 약속한 물건을 납품하지 않고 우기는 행태는 중국 업체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관행”이라며 “우리만 원칙을 주장하면 결국 중국에서 도태될 뿐”이라는 것이다.

한 대기업 지사 파견 임원은 “개당 100위안인 제품을 현지 통역사가 120위안으로 통역하고 남는 20위안은 상대 업체랑 반반씩 나눠가지는 사례도 직접 겪었다”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상술이 뛰어나다는 중국인의 특성도 알아야 초반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대만 폭스콘의 노동 착취 문제가 불거지는 등 여론이 악화된 것도 외국 기업이 감당할 몫이다. 정부 정책이나 현지 직원들의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