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상 첫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려진 지난해 12월 5일, 베이징 이좡(亦庄, Yizhuang)공업원의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았다. 편서풍이 불어 베이징·톈진 등의 중국 북동부 지역의 미세먼지를 남서쪽인 한국으로 날려 보낸 탓이다. 덕분에 베이징에 몇 개 남지 않은 제조단지인 이좡의 모습을 또렷하게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이좡공업원은 베이징의 유일한 국가급 경제기술개발구로 전자정보통신·생명공학·자동차·장비제조 등 4대 산업으로 구성된 곳이다. 단지 내 첨단기술 산업 생산액은 전체 산업 생산액 비중의 95% 이상을 차지하며 9년째 연속 80% 초과를 기록했다. 과학기술 전환비율은 80% 이상으로 전국 5% 평균 수준을 크게 초과하고 있다.
공원원 내에서는 디지털TV산업단지·벤츠산업단지·마이크로전자산업단지·신의약산업단지 등 여러 클러스터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글로벌 기업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 BOE와 BOE에 유리를 공급하는 코닝이 디지털TV산업단지에, 중국 파운드리 업체인 SMIC 등이 마이크로전자산업단지에 입주해 있다. 의료설비 단지에는 GE가, 신의약단지에는 바이엘 등이 있다.
이좡공업원에 오면 오직 첨단 기술 산업만이 베이징에 남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기존 베이징에 있었던 공장들은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고 그 자리는 공원과 같은 문화 시설이 대신했다. 중국철강이 나가고 난 자리에 애니메이션단지가 들어선 것이 대표적이다. 베이징 내에서는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인터넷·소프트웨어 등의 산업이나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키운다.
정부 정책이 아니라고 해도 베이징에서 단순 조립 라인은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다. 이미 베이징의 물가는 서울을 넘어섰다. 베이징에서 살고 있는 중국 변호사 진 모씨는 “한국에 2년 간 파견 가본 적이 있어 중국과 한국을 자주 비교한다”며 “베이징 시내 웬만한 아파트 가격은 서울 강남 수준을 넘어선다”고 말했다. 교육비나 의료비는 말할 것도 없다. 고액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이들만이 베이징에서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조단지를 옮겼지만 스모그는 여전하다. 올해 유난히도 심하다는 스모그는 육안으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맑은 하늘에 눈이 부셨던 5일도 하루가 지나니 공기가 180도로 변했다. 베이징의 초미세먼지(PM2.5, 지름 2.5μm 이하) 농도는 300㎍/㎥을 넘겼다. 올 1월 베이징의 초미세먼지(PM2.5, 지름 2.5μm 이하) 농도는 993㎍/㎥으로 세계보건기구(WHO) 권고기준의 40배에 달했다고 한다.
첨단으로 바뀌어가는 중국 산업과 달리 아직도 발전은 석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스모그가 겨울에 유독 심한 것은 이미 70%에 달하는 중국의 석탄의존도가 난방으로 인해 더욱 높아지는 탓이다. 올해 중국 북동부 공업지역의 대기오염지수는 전년 대비 40% 증가할 정도로 연료 사용이 늘었다고 한다. 일부 글로벌 기업은 생명수당을 지급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정부도 대책을 세울 모양새다.
친환경에 대한 의지는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 BOE 8세대 공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BOE 8세대 공장 건물 옥상에는 태양전지가 빽빽이 들어서있다. LCD 생산라인을 제외하고 사무실 등의 공간에 필요한 전기는 모두 이곳에 설치된 태양전지가 생산한다.
BOE 관계자는 “재생수와 태양전지를 사용하는 등 그린 빌딩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향후 다른 지역에 건설하는 공장도 이런 콘셉트로 세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시내에서는 자동차 규제도 이미 시작됐다. 5~6년 전만해도 대로를 가득 채웠던 자전거 물결은 사라진 지 오래다. 여전히 자전거는 서민들의 주요 출퇴근 수단이지만, 자동차 수에 비하면 극히 적은 숫자일 뿐이다. 자동차 숫자가 급격히 늘어난 베이징은 2011년부터 한정된 숫자만 신규 번호표 발급을 허가하기로 하고 급기야 추첨제를 도입했다. 베이징에서 아반떼 한 대를 사기 위해서는 35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하는데도 번호표를 받기 위해서는 매달 1대 90~100 가량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올해는 1 대 160 정도까지 경쟁률이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업체 입장에서는 팔 수 있는 대수는 줄었지만 매출은 줄어들지 않는다. 아무리 생산비용이 높아진다고 해도 벤츠·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전 세계 자동차 업체들이 베이징을 떠나지 않는 이유다. 자동차처럼 물류 비용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하이테크 산업이라면 시장과 맞닿아 있는 것이 당연하다.
소수의 첨단 제조업만이 남은 베이징은 중국이 더 이상 `세계의 공장`이 아님을 보여준다. 중국은 이제 세계의 `지갑`으로 불린다. 온라인쇼핑몰의 성장세가 이를 증명한다. 중국의 블랙프라이데이로 불리는 지난 11월 11일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몰은 하루 거래량이 350억위안(약 6조원)에 달했다. 이같은 중국의 내수와 하루 만에 배달이 가능하다는 탄탄해진 물류가 중국 전체 제조업을 뒷받침한다.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는 제품들은 굳이 시장 옆에 공장을 둘 필요가 없다. 저렴한 인건비를 찾아 내륙으로 이동하는 것이 답이다.
중국 전역에서 제조업의 가장 큰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곳이 베이징이라면 중관춘은 그 정점이다. 디스플레이 등의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조성한 이좡 단지를 제외하고는 제조시설은 이미 베이징을 떠나고 있다. 대신 학교와 연구소가 밀집한 중관춘이 첨단 산업의 메카로 떠올랐다. 중관춘 산업파크는 중국 하이테크 GDP의 20% 가량을 담당하는 지역이다.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 시설도 풍부해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도 불린다. 칭화대·베이징대 등 주요 대학은 물론 창업기지로 처쿠, SW 분야 집적단지로 SW파크가 대규모로 조성되어 있다. 해외 첨단 기업 M&A 자금의 상당수가 중관춘에 본사를 둔 금융·하이테크 기업으로부터 나온다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KOTRA 베이징무역관의 변용섭 차장은 “베이징의 첨단 산업은 이좡과 중관춘으로 대표할 수 있다”며 “이좡에서 첨단 제조업을 육성하고 중관춘은 R&D와 자금 등 첨단 제조업을 뒷받침해주는 형태”라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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