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제조업 로드를 가다]중국-①세계 제조업의 중심 `중국`을 가다

[아시아 제조업 로드를 가다]중국-①세계 제조업의 중심 `중국`을 가다

시장조사 업체 IHS는 지난 2010년 중국 제조업이 전 세계 제조업 생산액의 19.8%를 차지해 19.4%에 그친 미국을 앞지른 것으로 집계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19세기 중반 산업혁명으로 부흥한 영국에 1위 자리를 뺏긴 지 160년 만에 제조업 1위를 탈환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다. 세계 제조업이 중국행 러시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전후. 중국의 2000년 제조업 생산액 점유율이 6.9%였으니, 10년 만에 3배 가까이 점유율을 늘렸다. 지난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을 펼친 후 드넓은 대지와 값싼 노동력, 파격적인 세제 혜택 등을 내세우며 제조공장을 유치한 중국은 비로소 명실상부한 `세계의 공장`의 자리를 꿰찼다.

지금 중국은 또 다시 완전히 달라지는 모습이다. 여전히 세계의 공장이지만 과거의 공장이 아니다. 이제 더 이상 노동집약적 산업이 발붙일 곳은 없다. 경제권 주요 거점에 단순 조립 제품 공장을 세웠다가는 비싼 인건비 때문에 수지를 맞출 수 없는 것은 물론, 정부 허가를 받기조차 힘들다. 공해 유발 산업은 말할 것도 없다. 나이키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에서 철수하기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다. 다만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는 첨단 산업 만큼은 예외다.

지역적으로도 확연한 정책 차이를 보인다. 과거 중국 정부가 교역이 편한 동부 연안을 중심으로 개발 정책을 펼쳐왔다면 이제는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서부 내륙 지역으로 눈을 돌렸다. 동부 연안에 집중됐던 인프라 구축과 세제 혜택 등의 지원 정책이 서부 내륙 분야로 옮겨간다는 뜻이다.

세계 제조업의 중심인 중국이 움직인다는 것은 해외 기업들의 전략도 전면 수정돼야 한다는 뜻이다. 한중 수교 이후 잇따라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이제는 시안과 같은 내륙을 차기 투자 지역으로 주목하고 있다. 기업 전략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중국 정부의 제조업 정책 변화는 세계 시장 지형도를 바꿔놓고 있다. 중국의 인건비 상승과 투자 정책에 따라 동남아 지역이 자연스럽게 제2의 공장을 뜻하는 `포스트 차이나`로 떠올랐다. 동남아 제조업 로드의 발전도 출발은 중국인 셈이다.

전자신문 신년 대기획 `아시아 제조업 로드를 가다` 1부는 이같은 중국 제조업 현장의 변화상을 집중 조명한다. 중국 내에서 제조업 로드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총 5회에 걸쳐 점검한다. 1회에서는 중국이 어떻게 산업을 키워왔는지, 향후 제조업 진흥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펼쳐질 것인지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2회부터 5회까지는 권역별 변화 양상을 싣는다. 선전·둥관·광저우 등으로 대표되는 주장 삼각주, 상하이·쑤저우·항저우 등지를 일컫는 창장 삼각주, 베이징과 톈진을 잇는 북동 공업지역, 시안·충칭 등 서부 내륙 지역을 분석한다.

◇`동부·연안`에서 `서부·내륙`으로

지난 1978년 개혁 개방과 함께 내건 `선부론`은 중국을 빠른 속도로 성장시켰다. 선택과 집중을 의미하는 선부론은 특정 지역을 집중 발전시켜 외자를 유치하고 부를 창출했다. 선택된 지역은 당시 중국 지도부가 주목한 정치의 중심이기도 하다.

처음 주목을 받은 곳이 주장 삼각주다. 가난한 어촌에 불과했던 선전·후이저우는 1980년대 글로벌 기업들의 완제품 생산 기지로 탈바꿈했다. 선전·둥관·광저우 등 주장 삼각주 9개 도시에서는 통신장비·컴퓨터, 교통·운송장비와 각종 부품, 제련·압연 가공업에 이르기까지 제조업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1990년대 들어 그 명맥을 이어 간 곳이 상하이 등지의 창장 삼각주다. 상하이 푸둥은 중국 발전의 상징과 같다. 창장 삼각주 경제권은 중국 최대 경제권으로 성장, 전국 GDP의 20%를 점유하고 있다.

2000년대 후진타오 주석 시대 성장을 대표하는 지역은 톈진이다. 톈진과 베이징 주변의 징진(베이징-톈진) 도시 경제권은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급부상했다. 특히 톈진의 빈하이신구는 상하이 푸둥 이상으로 키운다는 전략 아래 성장한 지역이다.

시진핑 시대 새롭게 조명을 받는 곳이 서부 내륙이다. 2000년 초반부터 `서부 대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화 기반을 다진 서부 내륙은 이제 선전·상하이·톈진에 버금가는 지역으로 도약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시진핑 시대부터는 큰 틀에서 국가 산업 정책도 바뀌는 모양새다. 중국 정부는 이제 선부론과 같은 불균등 성장 정책에서 벗어나 지역 균형 발전을 외치고 있다. 기존 동부 연안 산업지대는 `업그레이드`로 전략이 바뀌었다. 상대적으로 덜 개발된 서부 내륙 도시들에는 혜택을 집중하고 있다.

서부 내륙 지역만을 놓고 보면 여전히 선택과 집중 정책이 계속된다. 시안·충칭·청두·오르도스 등 새로운 도시들을 발굴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는 주장 삼각주부터 시작된 과거 중국 제조업의 영광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성장 위주 불균등`에서 `격차 해소` 정책으로

중국 제조업 로드가 동부 연안에서 서부 내륙으로 발자취를 옮기는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정책 변화다. 선부론 덕에 중국은 1978년부터 2008년까지 30년 동안 연평균 9.95%에 이르는 경제 성장을 이뤘다. 선부론은 지역적으로는 동부나 연안을, 산업 측면에서는 내수보다 수출을, 또한 그 중에서도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제조업을 키웠다.

이와 함께 각종 대외 시책들이 성장을 잇는 동력이 됐다. 1978년 개혁개방 정책에 이어 2001년 WTO 가입이 대표적이다. 그 사이 성장률의 등락은 있었지만 2008년까지 성장 기조는 꾸준했다.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다. 도시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거품은 사회 문제를 야기했다. 제조업 단지에서 저임금 노동력이 부족한 지경에 이르렀다. 성장률은 급락했다. 2007년 13% 성장으로 정점을 찍었던 중국의 성장률은 2010년 10.4%, 2011년 9.3%, 2012년 7.8%로 떨어졌다. 2013년은 7.4~7.6% 정도가 예상된다.

이미 커버릴 만큼 커버린 중국이 여전히 성장률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고용이다. 최근 리커창 총리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새로운 취업인구가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최소 7.2%는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존 산업지대만을 놓고 본다면 이 같은 성장률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지역 개척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이미 발전한 도시 지역에서는 고용 문제가 심각하다. 일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없다.

톈진에 공장을 세운 한 국내 부품업체 법인장은 “몇 년 전만해도 단순 조립 라인에서 월 20만~30만원에 인력을 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70만~80만원이 기본”이라며 “그나마도 젊은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기피해 인력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에서 인력이 부족하다는 기업들의 푸념은 언뜻 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구 현황을 보면 왜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났는지 파악할 수 있다.

노동인구라고 할 수 있는 16~59세 인력이 중국에는 약 9억3000만명에 이른다. 엄청난 숫자다. 그런데 기업들이 선호하는 젊은 노동력(16~35세) 인구는 2억3000만명 밖에 되지 않는다. 상후하박이 심한 중국에서 글로벌 기업들은 중졸·고졸 인력을 찾지만 오히려 이들 인력은 기근 현상을 보인다. 경제 정책 변화가 필요해진 시기가 된 것이다. 중국은 미개발 지역을 발굴하는 것, 첨단 산업을 키우는 것 등에서 성장률을 유지하는 길을 찾았다.

지난 11월 개최된 3중 전회(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도 이런 기조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3중 전회에서 부모 중 한명이 독자면 2명의 자녀를 갖도록 한 조치도 노동력을 양성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LG경제연구소의 이철용 연구위원은 “개혁개방 정책 이후 중국이 일관되게 불균등 성장 전략을 취하다 보니 투자 효율이 떨어지고 지역 격차가 심해지는 등의 문제점이 발생했다”며 “이제는 지역 균형개발, 내수 확대, 취약 계층 권익 보장 등을 통해 과거의 성장 모델을 보완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첨단 기술, 서비스업에 집중

해외 기업의 공장을 유치하면서 펼쳤던 수출 위주 정책도 바뀌었다. 내수 시장과 산업을 키우는 것이 첫 번째다. 특히 고임금 인력을 수용할 수 있는 첨단 기술 제조업이나 서비스 산업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소비부양책인 이구환신(신제품을 구매할 때 중고제품에 10% 보조금을 지급) 정책이나 에너지 보조금 혜민 정책은 내수 시장을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내수 산업은 서비스업이나 전략적 신흥 7대 산업을 중심으로 지원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첨단 화학·제약, 에너지 산업 등이 그 대상이다.

중국에 진출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들도 이들 업종이 중심이다. KOTRA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이후 서비스업의 중국 외국인직접투자(FDI) 비중이 제조업을 넘어섰다. 중국 상무부가 집계한 지난해 1~3분기 전체 투자 유치 규모에서도 서비스업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중국의 전체 투자유치 규모는 886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6.2% 늘어났을 뿐이지만 서비스업은 447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3.3%나 증가했다. 제조업 투자 유치액은 355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 감소했다. 제조업 비중은 전체의 40%에 그쳤다.

단기간 내 제조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힘은 중국이 개방을 통해 외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한 데 있다. 이제는 서비스에 주목한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세계의 지갑`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이 때문이다.

다만 첨단 제조업에 한해서는 사정이 다르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유치한 시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안 가오신기술산업개발구는 `삼성 프로젝트 전담반`을 구성해 적극 지원하고 있다. 공항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직통 연결하는 고속도로까지 구축해 줄 정도로 인프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세제 혜택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지난 2008년 외자 기업에만 감경하던 법인세를 국내외 할 것 없이 15%에서 25%로 통일했다. 그러나 첨단 산업만큼은 15% 감경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 업계 전문가는 “디스플레이·반도체 같은 첨단 분야는 여전히 법인세 감면 혜택을 본다”며 “중국 시장에 팔기 위해 현지에 공장을 짓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글로벌 제조기업들의 전략 수정

중국이 변화하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전략도 궤도를 수정하고 있다. 저임금이 목적이라면 주변 농촌에서 노동력이 유입될 수 있는 미개발 혹은 저개발 지역을 공략해야 하는 시점이다. 다행히 중국은 서부 지역에 대대적으로 고속도로와 고속철 인프라를 구축하며 물류의 불편을 해소하고 있다.

동부 연안 지역에서 인건비 상승으로 고충 받는다면, 서부 지역으로 공장을 옮기거나 방향타를 바꿔야 한다. 삼성전자가 베트남에 휴대폰 공장을 세운 것이나 나이키·아디다스 등이 아예 공장을 동남아로 이전한 것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중국 시장에서 한층 더 강도 높은 현지화 전략을 취하는 기업들도 많다. 방대한 중국 내수 시장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전·자동차 기업들을 따라 진출한 소재부품 협력사들도 이와 같은 경우다.

장하수 LG하우시스 톈진 법인장은 “톈진법인을 통해 중국 내 소재사업의 생산거점을 확충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며 “이를 통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