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제조업 로드를 가다]중국-③중국의 부(富)는 양쯔강을 따라 흘렀다

기원전 4500년 무렵부터 중국 양쯔강 하류 유역에서는 당시로서는 선진농법인 관개(灌漑) 농업이 발달했다. 연평균 기온 17~18℃ 아열대 기후라 벼농사가 많았고 넓은 평야를 이용해 대규모 농경이 가능했다. 중국인들은 “이재(理財)에 밝은 걸로 치면 항저우·쑤저우 사람이 으뜸”이라고 하는데, 오랜 옛날부터 농사를 지어 부유하게 살아온 덕이다. 춘추전국시대 오(吳)나라 수도인 쑤저우와 남송(宋)시대 수도이자 시호(西湖, 서호)를 끼고 있는 항저우는 과거 `태평천국(太平天國)`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돈이 많은 곳에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상·공업도 발달한다. 605년 수나라 양제는 베이징과 항저우를 잇는 대운하를 건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농산물 산지에서 바다로 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상하이도 일찍부터 항구가 발달했다. 점점 인구가 불어 청나라 시대에는 인구 20만명을 넘는 도시로 커졌다. 아편전쟁 이후 상하이에 제국 열강들이 조계지를 설치하면서 중국 대륙으로 통하는 관문이 됐다.

천혜의 자연 조건과 역사적 배경 때문에 창장삼각주는 중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23%를 차지하는 곳으로 성장했다. 정부가 주도해 투자와 개발을 이끈 주장삼각주에 비해 창장삼각주는 자연발생적인 산업 클러스터 중심으로 성장했다. 특히 항저우만 항저우·자싱·닝보를 중심으로 방직업, 전기기계, 일반설비, 화학, 자동차 부품산업이 고루 발전해왔다.

듀폰, 미쓰비시화학, 이토추, 페트로차이나, 한화 등이 저장성 닝보 연안에 제조 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석유화학제품거래소가 니옵 메이산 보세항구에 위치한 것도 이들 대기업 화학 회사 때문이다. 전자제품·자동차 등과 달리 바닷가에 인접해야 유리한 화학산업 특성상 이 업체들이 다른 혜택 때문에 중국 내륙으로 이전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공업에서 물류로 산업 구조 변화

다양한 산업군이 공존하고 특히 원자재인 화학 산업이 저장성 닝보를 중심으로 몰려 있다보니 물류도 자연스럽게 발전했다. 중국철도총공사는 창장삼각주 지역 `1일 생활권`을 목표로 지난해 난징-항저우, 항저우-닝보 구간에 각각 256㎞와 155㎞를 잇는 고속철도를 신설했다. 이동 시간은 각각 70분, 53분이고, KTX보다 빠른 시속 350㎞로 운행한다.

기존 상하이-닝보를 잇는 `후닝철로`, 상하이-항저우 사이를 다니는 `후항철로`, 베이징-상하이 구간 `징후고속철로` 등과 더불어 그물망 같은 고속철도망이 짜여졌다. 상하이, 쑤저우, 베이룬, 저우산, 난퉁, 난징 항구가 동부 해안을 따라 들어서 중국 최대 물류 중심지 역할을 한다.

앞으로 이 지역은 물류 거점으로 더욱 부상할 전망이다. 서부·내륙에서 생산한 제품과 동부 연안에서 만든 화학 원료를 실어날라야 하기 때문이다. 산업 클러스터가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던 것처럼 산업 구조도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있다.

◇제조업 이탈 막기 위해 클러스터 현대화 추진

최근 후저우시 소상공인 단체가 집단 시위를 벌이는 일이 발생했다. 부촌으로 알려진 지역이지만 노동집약 산업인 안경·라이터 등의 업종에서 중소기업들이 연쇄 도산하면서 몇 년 전부터 지역 경기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력난, 자금난, 세금부담 등 3중고를 겪고 있다.

산업구조가 중소·노동집약적 제조업 중심에서 물류·금융 등으로 변하면서 생긴 문제다. 노동 인구의 불만을 무마하고 산업 구조 변화를 조금이라도 지연시키기 위해 저장성 정부가 내놓은 `12차 5차 계획(2011~2015년)`안은 가전, 방직, 광전기, 실리콘, 밸브, 자성재료 등 기존 경공업 중심 산업을 더욱 확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제조업의 경우 중소기업 위주로 성장해 온 탓에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대기업을 유치하고 인프라를 갖출 수 있을지 미지수다. 특히 중앙 정부의 서부내륙 개발 계획 때문에 제조업체들이 과거에 받던 혜택도 감소했다. 중국 내에서 가장 인건비가 비싸지만 임금 상승률은 다른 지역과 비슷하다는 것도 약점이다.

상하이는 지난해 기준 최저 임금이 월 1620위안(약 27만9740원), 우시·난징은 각각 1480위안(약 25만5570원), 쑤저우는 1530위안(약 26만4200원)에 육박했다. 임금이 높은 축에 속하는 주장삼각주(광저우 인근) 지역에 비해서도 많게는 500위안 높다. 특별한 우대 혜택이나 인프라 없이는 쉽게 투자를 결정하기 힘든 지역으로 변했다.

이에 따라 파격적인 혜택이 등장하기도 했다. 쑤저우공업원구는 `원스톱 서비스 제도`를 통해 기업 활동 민원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전략을 편다. 투자 상담, 용지 알선, 인력 확보, 수출입 통관 등 인허가 절차가 2주 만에 끝난다. 기업 임직원들이 수시로 다녀갈 수 있도록 급행 비자도 발급해준다. 물류 통관 절차도 간소화시켰다. 상하이 푸둥공항으로 들어오는 화물은 공항에서 30시간씩 대기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쑤저우공업원구 내 기업은 24시간 통관 서비스를 이용해 보통 4시간, 늦어도 10시간 안에 물건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삼성디스플레이와 관련 협력 업체들이 쑤저우에 진출하기로 결정한 지난 2009년 이후에는 새롭게 발을 디딘 국내 대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편리성은 좋지만 역시 생산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 2000년대 중반경 국내 카메라모듈 전문업체 엠씨넥스가 상하이에 제조 공장을 설립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서보홍 중국엠씨넥스 총경리(지사장)는 “중소기업이고 브랜드가 약한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오히려 상하이 프리미엄을 이용했다”며 “상하이에 공장을 지을 정도로 기술력에 자신있는 회사라는 걸 적극 알렸다”고 말했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이제 상하이 지역에 공장을 짓는 게 적지 않은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쑤저우(중국)=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