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제조업 로드를 가다]아세안-①한국 제조업 로드 종착점은 어디에?

[아시아 제조업 로드를 가다]아세안-①한국 제조업 로드 종착점은 어디에?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해외투자 이후 국내공장 운영

우리나라 제조업체들은 중국을 거쳐 아세안으로 내달리고 있다. 향후 남미·아프리카가 우리 제조업 로드의 종착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기업이 밖으로만 나가는 사이 국내 제조업 기반은 점차 흔들리고 있다. 허약해진 국내 제조업을 회춘시켜 경주마처럼 다시 힘차게 달릴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아시아 제조업 로드`를 따라가면서 내린 결론이다.

국내에서 제조업이 다시 꽃 필 기회는 아직 있다. 우리 제조업은 일본을 벤치마킹해 성장했다. 세트를 넘어 일부 부품에서는 일본과 대등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소재·생산기술 분야에서는 여전히 격차가 크다. 우리 기업이 해외에 투자를 확대하는 것과 상관없이 아직 국내에서도 투자해야 할 분야가 많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하고, 자동화 설비 비중을 높인다면 국내 제조업 부흥은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입주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해외 투자 이후에도 국내 공장을 현상 유지(69.0%)하거나 확대(21.8%)하겠다고 답변한 기업이 90.8%에 달했다. 대기업일수록 국내 생산시설 유지 혹은 확대를 검토하는 비중이 높았다. 국내 공장을 축소하겠다고 답변한 기업은 7.5%에 불과했다.

10년 전 실태조사 결과에서는 해외 이전 후 국내 공장 유지 여부에 대해 국내 생산 확대(6.5%)와 현상 유지(52.3%)로 답한 곳을 합쳐 58.8%에 불과했다. 당시 국내 공장을 축소하겠다고 답변한 기업은 34.1%에 달했다. 과거와 달리 해외 투자 확대가 국내 제조업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가 약해진 셈이다. 제조업 투자 환경이 개선될 경우 오히려 국내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고 답변한 기업은 55.9%에 달했다.

산단공 관계자는 “국내 산업단지는 과거 제조업 중심으로 설계돼 성장 유망 산업을 위한 기반 조성이 미흡하다”며 “불합리한 입주 규제를 완화하고, 물류 등 인프라를 개선해 제조업의 국내 투자 활성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조업 국내 유턴 가능성도 싹트고 있다. 지난해 KOTRA가 해외 진출 240개 기업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0개 기업이 유턴 의사가 있다고 답변했다. 최근 중국에 진출한 보석 업체 14개사가 익산시와 생산 거점 국내 유턴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제조업 유턴 투자를 유도하려면 국내 복귀를 희망하는 기업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지원 정책도 강화해야 한다. 유턴 투자가 실질적으로 우리 제조업 체질 강화로 이어지려면 무엇보다 후방 공급망(SCM)을 동반한 첨단 산업 유치가 중요하다.

미국처럼 산업 생태계 경쟁력 강화를 위한 보다 큰 그림도 필요하다. 미국은 해외진출 기업의 유턴을 유도하는 등 제조업 부활을 꿈꾸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임기 중 핵심 사업 중 하나로 제조업 부활을 꼽았다. 미국 정부 정책에 힘입어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 비중은 2009년 이후 점차 반등하고 있다. 지난 3년 간 미국 제조업 고용자수는 53만명이나 증가했다. GE·월풀·포드 등 미국 대기업들이 중국·인도네시아·멕시코 생산 공장을 철수하거나 규모를 줄인 대신 미국 내에 신규 공장을 건설하거나 생산 비중을 확대한 결과다. 최근 애플은 미국 내에서 맥북을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경기 회복 순풍을 타고 미국의 제조업 부활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혁신을 골자로 하는 `선진 제조업(advanced manufacturing)` 육성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리 정부의 제조업 유턴 정책이 보다 실효성있게 거듭나려면, 산학연 네트워크를 더욱 강화하고 IT 융합을 가속화해 고부가가치 산업을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치적 문제가 해결돼 남북 관계만 개선된다면 개성공단 같은 협력 모델도 우리 제조업 부활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개성공단은 우리 수도권 시장에 근접해 있어 물류 등 여러 측면에서 굉장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에 진출하기도 수월하다.

기술과 자본을 가진 한국 기업이 개성공단에서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한다면 시너지 효과는 적지 않다. 내수 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상당한 경쟁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자부품 전문업체인 유양디앤유 김상옥 사장은 “정치적 문제가 해결돼 북한에 개성공단 같은 곳이 4~5개 생긴다면 해외 진출을 고민하는 제조 기업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IT 인프라와 경영 노하우,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 중국의 자본 등이 결합된다면 큰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