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엔젤(개미투자자) 투자 규모가 미국의 0.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금없는 창업 실현이야말로 `팥소 없는 찐빵`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하경제 규모가 400조원이나 되고, 아무리 정부가 창업을 외쳐도 자금 투자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원장 김흥남) 창의미래연구소(소장 손승원)가 펴낸 창업경제시리즈 네 번째 보고서 `엔젤투자 국내·외 현황 및 활성화 방안`에 따르면, 지난 2011년 국내 엔젤투자 규모는 296억원으로 미국의 0.1%수준이며, 총 벤처투자 대비 엔젤투자 비중은 2%대로 크게 저조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0년 벤처붐 이후 엔젤은 다 죽은 셈이다. 이유는 벤처버블 후유증 때문이다. 버블이 꺼지면서 피해본 개미들이 다수 생기면서 위험회피 성향이 심화됐다.
실제 2000년대 벤처붐이 불면서 대덕연구단지 내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도 벤처 투자가 연구원들 사이에서 각광받았으나, 투자로 돈 벌었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당시 직분을 이용해 이익 편취를 목적으로 했다는 검찰 판단까지 나오면서 벤처 창업 자체가 대부분 사라졌다.
연도별 현황을 보면 이 같은 추세가 뚜렷하다.
지난 2002년 엔젤 규모가 4717명이 1109억원을 573개 기업에 투자했다. 이듬해인 2003년엔 3964명이 3031억원을 453개 기업에 투자했다. 이후 엔젤 규모가 급격히 줄어 지난 2011년엔 619명이 39개 기업에 296억원을 투자하는 데 그쳤다.
엔젤 투자 비중도 전체 1조4969억원 가운데 296억원인 1.98%에 불과했다. 이는 GDP(국내총생산)규모 대비 0.0023%다.
반면 미국은 2010년을 기점으로 엔젤이 살아나고 있다. 최근엔 투자규모가 큰 슈퍼엔젤 활동이 확대되는 추세다.
미국 내 엔젤투자 추이를 보면 지난 2012년 규모는 229억달러로 전년동기 대비 1.8% 증가했다. GDP 규모대비 0.15%에 해당하는 수치다.
투자 기업수도 2011년 6만1900개에서 6만6230개로 4330개, 1.2% 증가했다. 다만, 엔젤투자자는 26만8160명으로 전년대비 15.7% 줄었다. 대신 엔젤 평균 투자금액이 33만9725달러에서 34만1638달러로 증가했다.
미국 주요 엔젤투자 분야 비중은 소프트웨어가 24%로 가장 많고, 이어 헬스케어 21%, 소매업 10%, 바이오테크와 산업·에너지가 각각 8%, 미디어가 6%를 차지한다.
미 엔젤투자는 고용창출에도 크게 기여했다. 미국은 2013년 상반기에만 11만1500명을 고용했다. 고용창출 효과가 가장 큰 해는 2010년으로 37만명이 엔젤투자로 취업했다. 2012년만 따진다면 엔젤 투자 수혜기업 당 4.1명의 고용이 창출됐다.
눈여겨 볼만한 건 미국과 EU, 영국, 캐나다의 엔젤투자 시장 비교다. 비교수치가 미국은 2009년, 우리나라는 2011년이 기준이지만, 나타나는 숫자에는 의미가 크다.
당시 미국 엔젤은 투자액이 177억달러, 벤처캐피털은 182억7500만달러로 엔젤 비중이 49.2%나 된다. EU는 되레 엔젤투자가 55억5700만달러로 벤처캐피털 53억900만달러보다 많은 51.1%를 기록했다.
캐나다 또한 엔젤비중이 49.7%, 영국은 36.5%로 조사됐다. 우리와는 판이한 구조다.
이에 대해 ETRI 연구진은 미 엔젤투자 활성화 이유에 대해 공공기관(연방정부 및 주정부), 대학, 민간부문 간 유기적인 역할분담으로 이루어지는 창업지원시스템을 꼽았다.
또 다양한 세금우대 제도도 눈여겨 볼만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개인투자자가 해당 주식을 5년 이상 보유한 후 매각하면 매각 이익의 50%에 대해서는 비과세한다. 또 엔젤에 손실이 발생하면 이를 개인투자자 통상소득과 합산해 상계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놨다.
우리나라도 정부가 엔젤투자 활성화를 위해 소득공제비율을 지난해 30%로 정했다. 지난 2011년엔 엔젤투자지원센터 설치, 지난 2012년엔 엔젤투자매칭펀드 조성 및 한국엔젤투자협회결성 등 정책 추진이 이루어져 왔다.
지역단위 엔젤투자매칭펀드로는 경남과 부산, 대구, 광주가 각각 50억원, 강원이 30억원 결성돼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엔젤투자에 대한 세제지원이 미흡하다고 주장한다. 국가별 소득공제율이 미국과 싱가포르는 각각 50%, 일본은 40%다. 우리나라도 현행 30%를 50%까지 추가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2000년 벤처붐 당시 비전문가 세력의 투자로 인해 문란해진 시장질서와 무너진 신뢰성을 회복할 제도적인 장치도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놨다.
특히 이를 위해 엔젤투자 목적이 단순투자와 자금회수가 아니라, 장기투자에 대한 리스크 관리 및 기업 멘토링 능력 향상을 위해 경험과 식견이 풍부한 전문가 집단을 키워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함께 엔젤 활성화를 위해 투자 회수시장 다각화와 액셀러레이터와 엔젤투자자 간 투자 연계, 엔젤 지원프로그램 강화, 지역별 엔젤포럼 개최, 엔젤투자매칭펀드 결성 업체 지방할당 등도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놨다.
김주성 ETRI ICT전략연구실장은 “창업초기단계인 스타트업의 자금조달 지원을 위해서는 엔젤투자가 활성화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엔젤투자자 층을 두텁게 하는 등의 투자저변 확대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
(자료: ET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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