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의 미디어 공명 읽기] <3> MP3플레이어의 `치명적 유혹`

그리스 신화 ‘영웅 오디세우스’는 배를 타고 지금의 이탈리아 남서쪽 해안에 있는 섬 근처를 지나가야 했다. 이 섬에는 사이렌이라 불리는 요정이 살고 있는데, 지나가는 배의 선원들은 사이렌의 노래에 유혹돼 섬 쪽으로 이끌려가게 되고, 결국 배가 바위에 부딪혀 모두 죽게 된다.

오디세우스를 사랑하게 된 반인반수 키르케의 조언을 받아 오디세우스는 사이렌 노래에 유혹되지 않기 위해 미리 선원에게 자신을 돛대에 묶고 아무리 자기가 풀어 달라고 해도 절대로 풀어주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아 이들이 사이렌의 노래를 듣지 못하도록 한다. 이렇게 오디세우스는 무사히 그 섬을 벗어난다. 이야기에서 주목할 점은 요정 사이렌의 노래를 선원들은 듣지 못하고 오디세우스만 듣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혼자만 듣는 음악! 1979년 출시된 소니 워크맨과 20여년 후에 출시된 MP3 플레이어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차이에도 혼자서만 음악을 듣는 기기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워크맨은 역사상 처음으로 혼자만 음악을 듣는 관습을 만들어냈다. 그것도 언제 어디서든!

원래 음악은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곳에 함께 있어야만 했다. 콘서트홀은 이런 음악 청취의 상징적 공간이다. 축음기 발명 이후 음악 청취자는 녹음을 매개로 연주자와 가상적으로 공존하며 언제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워크맨이 등장하기 전까지 녹음된 음악을 들을 수 있던 장소는 대개 집안으로 한정됐다. 워크맨은 모바일 음악 청취와 혼자만의 음악 청취, 두 가지를 성취해낸 것이다. 호소카와는 개인화된 모바일 음악 청취를 ‘워크맨 효과’라고 불렀다.

워크맨의 첫 번째 모델은 이어폰을 꽂는 구멍이 둘이었으나 그 다음 해에 출시된 두 번째 모델부터 하나가 된다. 공동 청취 필수품인 스피커는 아예 처음부터 없었다.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의 귀는 이렇게 나 혼자만의 이어폰으로, 스피커 제거라는 밀랍으로 막아버린 것이다.

혼자서 음악을 듣는 것이 어떻다는 것인가. 혼자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나에게 말도 걸지도 말라는 메시지를 주는, 이른바 ‘타자의 배제’이자 ‘소통의 단절’이다. 이렇게 타인과 단절한 채 음악을 듣는 자신은 음악의 유혹 속에 빠져 사이렌 희생자들처럼 심미화된 또 다른 세계 속으로 이끌려간다. 사이렌 유혹에 빠져 그곳으로 가까이 가고자 발버둥치는 오디세우스를 선원들은 더 강하게 돛에 묶을 뿐이다.

‘계몽의 변증법’ 저자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이 신화에서 오디세우스 역설을 읽어낸다. 사이렌 유혹에 빠지지 않고 자유를 얻고자 돛에 자신을 묶은 오디세우스가 실제로 자유를 얻기보다 자신을 속박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의지 내지 이성은 이렇듯 역설적이고 부정적이며 또한 도구적일 수 있다.

워크맨을 계승한 MP3플레이어는 거의 무한한 저장 용량, 플레이 리스트 구성, 셔플 모드라는 랜덤 재생 기능을 추가해 워크맨의 개인화된 음악 소비 관습을 한층 더 고양시킨다. 현재 MP3플레이어에 저장할 수 있는 노래의 양은 우리가 평생 다 들을 수 없을 정도다. 두 명이던 사이렌은 무한 증식해 무차별적인 셔플 모드로라도 들으라며 우리를 유혹한다. 자신의 무드에 맞게 구성되는 플레이 리스트는 사이렌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우리는 그나마 워크맨에서 느끼던 낭만마저 사라져버린 MP3플레이어의 치명적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8세기에 이르러 서구의 상상력에서 사라졌던 그리스 신화의 사이렌 요정이 오디세우스와 MP3플레이어 사이의 공명 속에서 부활하고 있다.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소니 워크맨 1981년 출시 모델.
소니 워크맨 1981년 출시 모델.
BC 480-470년경의 사이렌과 오디세우스 화병.
BC 480-470년경의 사이렌과 오디세우스 화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