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인 필자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1964년 12월, 건국 후 최초로 1억달러 수출을 달성했다고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였다. 요즘은 5000억달러 수출을 달성하고도 덤덤해한다. 분명 “하면 된다”고 우기던 우리가 반 정도의 기적은 이룬 것이 틀림없다. 그래도 아직 갈 길은 멀다.
기술과 특허가 날로 중요해지면서 기술이나 영업비밀 불법 유출도 늘어나고 있다. 민관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불법 기술유출을 범죄로 규정하며 국내 우수기술 보호 수준을 향상시키고 있다.
하지만 `합법적 기술유출`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되고 있다. 국내에만 출원·등록된 특허가 바로 합법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공공연한 기술 유출의 주범이다.
특허 제도는 속지법이다. 따라서 발명가가 자신의 발명을 보호받으려면 자신이 원하는 국가에 특허를 출원·등록해야 한다. 만일 우리 발명가가 세계 시장에서 파괴적 혁신을 이룰 수 있는 발명을 착상했거나 비용 등 문제로 국내에서만 특허를 출원·등록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특허는 국내에서는 특허로 보호받을지 몰라도, 우리나라를 제외한 세계 각국에서는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로 전락한다. 전략적 주요국가에 특허를 출원·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국내 특허 출원국으로서 매년 25만건 이상의 특허가 출원된다. 이 중 우리나라 발명가, 대학, 연구소, 기업이 출원한 특허는 20만건이지만, 해외에 출원되는 특허는 전체의 20%정도인 4만건에 불과하다. 우리는 `합법적 기술 유출`을 통해 매년 16만건 가량의 특허기술을 세계에 헌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대학, 연구소가 합법적 기술유출의 주범이다.
대학교수와 연구원은 주로 정부용역으로 연구개발(R&D)을 수행하므로, 정부연구과제 수주가 필수이다. 정부 연구과제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연구결과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만 한다. 연구결과 평가 지표 중 하나가 특허 개수이다. 따라서 대학교수와 연구원은 발명의 질과는 무관하게 가능한 한 많은 특허를 출원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교수나 연구원의 승진 평가 지표에도 특허 개수가 포함되기도 한다. 따라서 교수와 연구원은 무조건 많은 수효의 특허를 출원할 수밖에 없다.
대학과 연구소의 특허관리부서는 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렇다고 양질의 발명만 선별하여 특허를 출원하기도 무척 어려울뿐더러 자신의 발명이 선택되지 않는 교수나 연구원과 논쟁에서 이들을 설득하기도 어렵다. 대학과 연구소는 수많은 발명을 모조리 특허로 출원하기 위해 변리사에게 덤핑 수준의 수임료를 지불한다. 그래서 연구비 10억달러 당 특허 건수가 우리나라가 세계 1위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예산이 부족해 해외특허 출원은 엄두도 못 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분별하게 출원되는 국내특허 대부분은 애당초 수익을 창출할 수 없기에 특허로 출원할 필요도 없는, 미미한 개량 발명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이들 악화에 뒤섞여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양화, 우량 발명들이다. 일례로 MP3 기술이나 싸이월드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술처럼 제대로 선택해 전략적 주요국에 집중적으로 특허를 출원했다면 세계를 호령할 수도 있는 발명을 우리는 지금도 알게 모르게 합법적으로 유출하고 있다.
며칠 전 박대통령은 “통일은 대(大)박”이라고 발표했다. 필자는 우수한 발명을 양질의 특허로 제조하면 대박은 아니더라도 중(中)박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속적 경제 성장의 원동력을 유지하려면 우리가 잘 하고 있는 제조업과 21세기 지식기반시대의 화두인 지식재산의 융합이 필수다. 창조력과 빼어난 손재주로 글로벌 마켓에서 고객과 시장을 확보하는 한편, 힘들게 확보한 글로벌 고객과 글로벌 시장을 양질의 특허로 지키는 것이다. 효율적 특허전략이 필요하며, 무분별한 국내특허 출원은 자제하고 선택과 집중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 특허 수효를 기준으로 연구 성과를 평가해 무분별한 국내출원을 유도하는 각종 평가지표를 개선해야한다.
심영택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초빙교수(yshim@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