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전체 연구개발(R&D)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산학연 협력연구는 선진국 수준에 비해 규모가 크게 뒤진다는 보도가 있었다. 중소기업은 협력연구가 기술역량 확대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글로벌 기업과 지식재산(IP) 확보 경쟁, 기술간 융·복합 확산, 혁신적 첨단기술과 서비스 출현 등 국제 시장 환경의 변화 속에서 전문 연구인력의 집합체인 대학과 연구기관은 우리 기업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우수한 원천기술과 강한 특허를 끊임없이 공급해야 한다. 국내 박사급 연구 인력의 80%가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종사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산학연 협력연구로 외부의 연구 자원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우리 기업이 기술경쟁력을 확보하는 지름길인 셈이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분야의 강점을 지렛대로 활용코자 하는 우리나라 창조경제와 조금 접근법이 다르지만 일찍이 문화 기반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영국에는 “가운(Gown, 대학)이 상아탑 속에 은둔해 있을 것이 아니라, 타운(Town, 시장)으로 걸어 내려와야 한다”는 말이 있다. 대학과 연구기관이 `학술적 성취물로 지식재산`만이 아니라 `시장이 필요로 하는 지식재산`을 창출하는데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경구다.
인텔은 캘리포니아대, 카네기멜론대, 북경대 등 세계 유수 대학이 위치한 10여개 지역에 연구소를 뒀다. 책임자를 해당 분야 최고 전문성을 갖춘 지역대학의 정교수로 임명해 20명 내외의 인텔사 연구원과 동수의 대학 연구원이 공동으로 산학 협력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인텔은 개방형 산학협력 모델을 통해 모든 컴퓨팅 기기를 연결하는 무선기술,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에서 비밀번호가 없이도 더욱 안전하게 접속하는 새로운 생체 인식기술 등을 개발해 글로벌 시장의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우리는 기업과 대학·연구기관간 인식 차이로 인해 협력연구 자체가 아직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산학연 협력연구에 대해 대학과 연구기관은 `기업은 비용을 대고, 학연은 지식을 투입하는 공동투자의 관계`로 여기는 반면 기업은 `대가를 지불하고 학연이 보유한 지식을 구입하는 거래`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산학연 협력연구 협약을 맺을 때 특허 등 연구 성과물 소유권의 귀속과 수익 배분 등에 대한 갈등을 유발해 민간 부문의 협력연구 활성화를 저해하고 있다. 그 결과 2011년 기준 국내 기업의 전체 연구개발 총투자액 36조7000억원이었지만 학연과 협력연구 투자액은 9750억원으로 2.65%에 불과했다.
이 걸림돌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지식재산위원회는 2013년부터 산학연 각 주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민간 산학연 협력연구 협약 가이드라인`을 시행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협력연구를 유형화하고 각 유형별로 소유권, 실시권, 수익 배분 등에 대해 호혜적이면서도 유연한 계약조항을 상호준거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시하고 있다. 가이드라인 수립 과정에서 다양한 협력연구 주체가 참여해 서로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큰 진전이었다. 가이드라인 시행 1년을 맞아 실시한 최근 실태조사에서도 자체 규정 또는 별도 법무인력을 갖지 못한 중소기업 활용도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등 현장에서도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는 올해 산업전문가, 법조계와 협상전문가로 구성된 `민간 산학연 협력연구 고충해소위원회`를 설치해 협상력이 취약한 주체에 대한 카운슬링과 주요 쟁점에 대한 권고 기능을 추가적으로 수행한다. 정책포럼 등을 통해 민간 협력연구 주체 간 교류를 보다 확대하고 가이드라인을 활용한 우수 협약사례를 발굴·포상할 계획이다. 실태조사도 정례화하고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가이드라인이 보다 광범위하게 활용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등 공정협약 문화의 조기 정착을 도모할 계획이다.
앞으로 민간 부문의 자발적 산학연 협력연구를 통해 기업은 시장 기회를 넓히고 학연은 연구 역량을 높이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과 연계 개발(Connect & Development)이 활성화되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 R&D의 양적·질적 도약이 함께 이루어져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간 주도 창조경제의 실현이 보다 앞당겨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고기석 국가지식재산위원회/미래창조과학부 지식재산전략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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