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70>KT 민영화 막전막후(1)

한국 통신 업계 판도를 바꿀 KT의 정부지분 매각이 끝난 2002년 5월 21일. 나들이하기에 좋은 봄 날씨였다. 1987년부터 추진해온 KT 민영화는 한 편의 대하드라마였다. 곡절은 있었지만 그 드라마가 15년 만에 막을 내렸다. 1981년 12월 11일 체신부에서 분리, `한국전기통신공사`로 출범한 지 21년 만이었다.

이상철 한국통신 사장은 2001년 6월 28일(현지시각)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양승택 정보통신부 장관, 윌리엄 존스톤 뉴욕증권거래소 사장, 로버트 스콧 모건스탠리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22억4229만달러 자금조달을 위한 상장 및 조인식을 가졌다. <KT 제공>
이상철 한국통신 사장은 2001년 6월 28일(현지시각)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양승택 정보통신부 장관, 윌리엄 존스톤 뉴욕증권거래소 사장, 로버트 스콧 모건스탠리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22억4229만달러 자금조달을 위한 상장 및 조인식을 가졌다. <KT 제공>

정부는 KT 잔여 지분 28.37%를 전량 매각해 민영화는 성공작이었다. 매각 목표인 `적정 가격`에 `완전 매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매각 금액만 4조9000억원으로 국내 증시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민영화 결과 SK텔레콤이 KT 최대주주로 등장하는 돌발변수가 발생한 탓이다. SK텔레콤은 정부 보유 KT 지분 매각에서 교환사채를 포함해 총발행주식의 11.34%(약 1조9300억원어치)를 매입했다. 무선시장의 강자인 SK텔레콤이 한국 통신산업의 리더이자 유선시장의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KT의 1대 주주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단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만약 정부가 이런 상태를 그대로 놔둔다면 SK텔레콤은 통신시장에서 독점기업이나 다름없었다. KT를 민영화해 3강 구도로 통신시장을 재편하려던 정부는 예상 못한 상황에 뒤늦게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KT 민영화를 완결했던 양승택 정보통신부 장관(현 IST 회장)의 증언.

“당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나중에 SK텔레콤이 KT가 보유한 SK텔레콤 지분과 상쇄하려고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상철 당시 KT 사장(정보통신부 장관 역임, 현 LG유플러스 부회장)의 회고.

“당시 SK텔레콤은 KT 주식을 매입해 1대주 주가 되자 삼페인을 터트렸다고 해요. KT 1대 주주가 됐으니 고무적이었을 겁니다.”

KT 주식 매각작업을 실무적으로 총괄한 한춘구 당시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지원국장(한국전파기지국 대표 역임)의 말도 대동소이하다.

“SK텔레콤의 1대 주주 등장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SK텔레콤은 KT 주식 매입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KT 주식 청약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당시 SK텔레콤은 KT 주식 9.55%를 매입한 후 “더 이상 지분 인수는 없다”고 말했으나 5월 21일 실시된 교환사채(EB) 발행에서 자사에 배정된 잔여물량 1.79%를 모두 청약해 KT 지분 11.34%를 확보했다. 결과적으로 잔여물량 1.79% 청약이 정부와 SK텔레콤 간 갈등이 표면화하는 시발점이 됐다. KT 민영화에 옥에 티가 생겼다고 할까.

KT 민영화 시발점은 1981년 12월 10일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정부기관에서 국영기업으로 변신하면서부터다. 1980년 12월 19일 김기철 당시 체신부 장관(작고)은 전두환 대통령에게 `통신사업경영체제개편`을 보고하고 재가를 받았다.

통신시장 개방을 앞두고 `선(先)국내 경쟁, 후(後)국제 경쟁`이라는 목표아래 정부가 직접 운영하던 전기통신사업을 한국전기통신공사에 넘긴다는 게 골자였다. 통신공사 설립 아이디어 근원은 미국 AT&T라는 게 정홍식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실 비서관(정통부 차관 역임)의 증언이다.

1987년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추진위원회를 설치해 그해 7월 당시 한국통신을 민영화하기로 확정했다. 경영권 확보에 필요한 51%를 제외한 49%를 1990년 25%, 1991년 24% 매각한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정부는 1997년 10월 1일 정부투자기관이던 한국통신을 정부출자기관으로 전환했고 1998년 12월 23일 한국통신 주식을 증권시장에 상장했다. 그해 5월 26일 한국통신은 주식예탁증서(DR)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해 발행주식의 14.5%를 25억달러에 매각했다.

한국통신은 2001년 2월 경쟁입찰 방식으로 주식 국내 매각에 나섰으나 발행주식의 1.1%인 333만주밖에 팔지 못했다. 정부는 2001년 4월 9일 외국인 소유한도를 33%에서 49%로 확대했다. 이는 2000년 12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에 따른 조치였다.

2001년 6월 28일(현지시각). 한국통신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2차 DR를 상장했다. 이날 DR 상장 및 조인식에는 양승택 정통부 장관과 이상철 한국통신 사장, 윌리엄 존스톤 뉴욕증권거래소 사장, 로버트 스콧 모건스탠리 사장, 서경석 LG투자증권 사장, 김용규 동원증권 사장 등 주간사 대표들이 참석했다.

한국통신은 정부 소유 17.8%를 DR당 20.20달러에 완전 판매해 모두 22억4229만달러(2조9125억원)의 외자를 유치했다.

이상철 사장은 이 자리에서 “이번 한국통신의 2차 DR 발행 성공은 강도 높은 경영혁신과 구조조정의 성공, 세계 최고의 초고속인터넷 국가로 KT의 성장가능성을 높이 인정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상철 사장은 그해 6월 12일부터 27일까지 유럽과 아시아, 미국 등지에서 12회의 그룹 설명회와 91회 개별 설명회를 갖는 등 강행군을 했다. 주요 지역에는 한춘구 정통부 정보통신지원국장과 민원기 통신업무과장(현 ITU 전권회의 의장)도 참석했다.

이 사장은 보스턴과 뉴욕 등지에서 미국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유창한 영어로 한국통신의 비전을 설명했다. 투자설명회에는 남중수 재무실장(KT 사장 역임, 현 대림대 총장)과 맹수호 자금국장(현 KTis 대표)이 참석했다.

이상철 당시 사장의 증언.

“뉴욕에서는 한 시간 단위로 투자자들을 만나 한국통신에 투자할 것을 설명했습니다. 그 당시 방을 워룸(War Room)이라고 불렀어요. 한 시간 또는 몇 분 단위로 하루에 10회 이상 기관투자자와 애널리스트들을 만났습니다.”

한국통신이 뉴욕에서 DR 발행에 성공했다는 보고를 받은 김대중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극찬했다고 한다. 이 사장은 그해 12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사장을 만나 한국통신 투자를 권유했다.

이 사장의 이어지는 증언.

“빌 게이츠에게 `MS가 유무선에 투자하면 대박난다. 투자하라`고 했더니 5억달러를 투자했어요. MS가 투자한다니까 미국 2개 해외기관투자자가 추가로 13억2000만달러를 투자했습니다. 미국에서 41억여달러를 유치한 것이죠.”

이 사장은 2001년 12월 11일 창립 20주년을 맞아 한국통신 명칭을 KT로 변경했다.

정부는 KT 민영화에 속도를 내 2002년 6월 말까지 끝내기로 했다.

2002년 3월 13일 오전 10시.

양승택 정통부 장관은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새해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양 장관은 이날 “KT의 정부 보유주식(28.4%)을 6월 말까지 내국인에게 완전 매각해 민영화를 마무리짓겠다”며 “민영화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KT의 공익적 역할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보고했다.

김 대통령은 이에 대해 “그동안 구축해 온 정보통신 인프라를 토대로 정보화를 한층 더 촉진해 지식경제 강국을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라며 “KT 민영화를 차질 없이 추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통부는 3월 17일 KT 매각 방안 수립을 위해 삼성증권과 LG증권, 현대증권, 외국계 JP모건 4개사로 자문사단을 구성했다. 정부는 그해 4월 9일 장승우 기획예산처 장관(해양수산부 장관 역임, 작고) 주재로 제10차 공기업민영화추진위원회를 열어 KT와 한국전력 등 5개 공기업 민영화를 차질 없이 추진하기로 거듭 확인했다.

정부는 4월 29일 KT에 대한 매각 방안 및 소유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확정했다. 남은 주식 중 5.7%는 우리사주로 사전 할당하고, 남은 물량 22.7%는 기관투자자 4%, 일반투자자 3.7%, 전략적 투자자 15%로 할당해 동시 매각하기로 했다.

KT는 5월 13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이상철 KT 사장과 삼성증권·현대증권·LG투자증권 등 주간사 사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관 및 일반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정부 소유주식 매각 투자설명회를 가졌다.

사흘 후인 5월 16일 정통부는 KT 주식 매각예정가격 특별위원회(위원장 한춘구 국장)를 열어 공모가 5만4000원, 교환사채(EB) 발행가는 5만9400원으로 확정했다.

민원기 당시 통신업무과장의 말.

“가격은 자문사단이 참석한 가운데 결정했습니다. 사전에 자문사들이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수요예측 조사를 해 나온 가격과 국유재산법에 따른 매각 예정가격을 고려해 결정했습니다. 당연히 KT 측 의견도 반영했습니다. 최종가격은 장관에게 보고해 결정했어요.”

KT 정부 지분 매각은 18일부터 21일까지 진행했다. SK텔레콤은 18일 KT 원주 청약에서 최대한도인 5%를 청약, 3.78%를 배정받았다. 그동안 SK텔레콤은 KT 주식매입에 미온적이었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마감시간을 5분여 남겨 두고 큰 베팅을 했다. SK텔레콤은 이어 20일 5.77%의 주식을 추가로 청약했다. 그리고 21일 나머지 1.79%도 모두 EB로 청약해 KT 대주주로 등장했다.

당초 SK텔레콤은 KT가 보유한 SK텔레콤 지분(9.27%)만큼만 확보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결과적으로 공언(空言)이 되고 말았다.

이와 관련한 한춘구 정통부 정보통신지원국장의 증언.

“매각을 앞두고 SK텔레콤은 KT 주식 청약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론에 자신들은 `청약에 안 들어간다`고 했어요. 그래서 정부가 참여를 요청하기도 했어요.”

신영철 SK텔레콤 홍보담당 상무(SK와이번스 사장 역임)는 잔여 배정 지분까지 모두 청약한 것에 대해 “KT의 향후 바람직한 지배구조 형성에 SK텔레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것으로 향후 적절한 시기에 EB 분량만큼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파문은 확대됐고 정통부는 사태 해결을 위해 긴박하게 움직였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