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겨울 축제인 동계올림픽이 24일 폐막식을 끝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많은 이변과 화제를 낳았지만 올림픽을 통해 재발견된 종목은 단연 ‘컬링’이다. 국내에서 컬링은 생소한 비인기 종목이었지만 사상 처음으로 한국 여성국가대표팀이 올림픽에 출전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첫 출전이 무색할 만큼 두둑한 배짱으로 무장한 한국 대표팀은 강팀 스위스와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과학, 문화로 읽다]`얼음 위 알까기` 컬링의 과학](https://img.etnews.com/photonews/1402/533751_20140221190040_871_0001.jpg)
반응은 폭발적이다. 특히 경기 중 선수끼리 오고가는 앙칼진 고함과 힘 넘치는 격려에 새벽까지 잠 못 이뤘다는 사람이 많았다. 알고 보나 모르고 보나 어느새 천천히 미끄러지는 돌에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컬링. 이 컬링에는 빙판의 마찰력을 이용한 고도의 과학이 숨겨져 있다.
컬링은 약 20kg 가량의 둥근 돌(스톤이라고 부른다)을 미끄러뜨려 35m 떨어진 빨간색 동그라미에 가까이 붙이는 운동이다. 경기 시작 전 빙판에 물을 뿌린다. 페블이라는 얼음 알갱이를 만들어 마찰력을 높이기 위한 작업이다. 투구자가 처음에 돌을 손에서 밀어낼 때도 그냥 놓는 것이 아니다. 스킵이라고 불리는 주장이 손으로 회전을 주며 서서히 놓는다. 그러면 돌의 양쪽으로 기압차라 생기면서 야구의 변화구처럼 휘어져 들어간다. 회전하는 돌이 길목을 막고 있는 돌을 아찔하게 비켜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우스라고 하는 동심원 표식 중심에 가장 가깝게 보내거나 숫자가 더 많으면 승리한다.
경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움직이는 둥근 돌 앞에서 브러시로 얼음을 문지르며 빗질(스위핑)을 하는 스위퍼들이다. 돌을 더 빨리, 더 멀리 보내기 위한 움직임이다. 얼음을 문지르면 마찰열에 의해 순간적으로 빙면이 녹고 표면에 수막이 생기면서 돌이 잘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이 스위핑에 따라 돌의 이동거리를 3~5m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니 정말 중요한 기술이다. 강하게 문지르면 돌의 속도가 빨라져 직선으로 미끄러지고 반대로 약하게 문지르면 곡선으로 움직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스위퍼들의 순발력이 요구되는 순간이다.
컬링은 과도한 체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일랜드 스포츠연구소 과학자인 존 브래들리에 따르면 열심히 브러시를 움직일 경우 선수 심장박동 수가 분당 170~200까지 올라간다고 밝혔다. 게다가 압력을 가하면서 브러시를 힘차게 좌우로 밀어야하기 때문에 등, 어깨, 몸통근육 등 탄탄한 상체 근육이 필요하다. 부드럽게 밀어도 마찬가지다. 인대가 끊어지거나 뼈가 부러지는 격한 스포츠는 아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좋은 컨디션이 필요하다.
게다가 끊임없이 머리를 써야한다. 다양한 작전 구상을 통해 두뇌 회전을 좋게 하고 상대팀과 심리전을 펼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감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경기다. 혼자만 잘해서 이기기 힘들고 수많은 전략이 숨겨져 있다. 페블이 뿌려진 정도와 얼음의 얼기를 신경써서 마찰력을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얼음 위 체스’ ‘얼음 위 알까기’ 등으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스톤이 얼음 위를 미끄러질 때 과학적인 지식도 함께 미끄러진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