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선두인 국내 디스플레이 기업들이 올해 범용 제품에 마케팅 전략의 초점을 맞추면서 그동안 뜨겁게 달아오르던 혁신 열기가 수그러들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면적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와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출시를 두고 삼성과 LG가 자존심 경쟁을 펼쳤던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인 분위기다. 올해는 단기 성과를 위해 중국·대만 업체들과 경쟁할 범용 제품 발굴에 급급한 모습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삼성디스플레이는 최근 혁신 제품을 위한 연구개발(R&D)은 우선 순위에서 미뤄두는 분위기다. 중국의 추격이 거세진 가운데 신기술 확보를 통해 격차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2012년 삼성과 LG 동시 공개를 시작으로 OLED TV 선출시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LG가 먼저 TV를 선보이며 기선을 잡았으나 곧이어 삼성도 가격을 낮춘 곡면 TV로 시장에 불을 질렀다. 거기다 무결점까지 내세우면서 디스플레이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췄다.
하지만 이같은 열기는 불과 6개월만에 사그라들었다. 여전히 대면적 AM OLED 수율 문제를 안고 있는데다 당장 수익을 내는 데 경영의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선투자를 진행한 LG디스플레이만 초고화질(UHD) OLED TV 시장을 발굴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다. 삼성디스플레이의 V1라인은 생산용이 아닌 공정개발용으로 바뀐 듯한 모양새다.
플렉시블 스마트폰 출시 이후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에 대한 기대감도 줄어들었다. 설비 투자에 대한 고민은 더 깊어졌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조만간 A3 투자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규모는 최소화했다. LG디스플레이는 여전히 설비 투자 계획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차기 버전의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도 곡면 수준의 스마트폰용 디스플레이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이 벤더블(구부렸다 펼 수 있는)·폴더블(접을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으나, 위험 부담을 안고 먼저 시장을 개척할 의지는 약해 보인다.
앞으로 2~3년 내 상용화를 목표로 추진하던 프린팅 방식 OLED에 대한 관심도 사라졌다. 프린팅 방식 OLED는 증착 문제를 해결하면서 소재 사용량도 대폭 줄일 수 있어 기대를 모은 방식이다. 지난해 CES에서 파나소닉이 프린팅 방식 OLED TV를 공개하면서 소재기업들과 협력도 급물살을 탔으나, 최근 들어 지지부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를 위해서는 OLED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당장 수익부터 챙겨야 하는 상황”이라며 “연구 조직이 바뀌면서 프로젝트 자체가 중단된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