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자동차 R&D 자금지원의 딜레마

산업통상자원부가 올해 산업핵심기술개발사업 신규과제 공고를 냈다. 쉽게 풀어쓰면 각 산업에서 미래 먹을거리가 될 만한 핵심 연구과제를 정부가 지원하겠으니 원하는 기업은 참여하라는 것이다. 1100억원 정도의 예산을 110개가 넘는 과제에 분배하다보니 금액이 성에 차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핵심 산업의 미래를 밝혀줄 ‘마중물’ 역할은 기대된다.

그런데 공고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자동차’가 통째로 빠진 것이다. 조선,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대표 산업은 물론이고 바이오, 나노융합, 로봇, 의료기기 등 미래 유망산업까지 빠짐없이 포함됐지만 자동차는 도무지 찾을 수 없다. 110개 세부 과제 중 두어 개 정도 자동차와 관련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산업에서 곁가지로 차량용 부품을 연구하는 것일 뿐이다.

사정은 이렇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대기업에 정부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한다’는 논란이 있은 후 신규 예산이 모조리 삭감됐다. 관계 부처 관계자들이 업계 현실을 들어 국회의원들을 설득했지만 경제민주화 흐름에 묻혔다.

자동차 업계는 이를 두고 현실감각이 없는 결정이라고 국회를 비판했다. 정부 R&D 과제에 대기업이 참여하면 표면적으로는 대기업에 정부 돈을 지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과제에서 개발된 기술을 대기업이 사도록 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참여하지 않으면 기술을 팔 곳이 없다. ‘해외에 팔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오랜 납품 경력이 없는 부품은 결코 사주지 않는 게 전세계 자동차 업계의 공통적인 특성이다. 안전이 최우선인 까닭이다.

결국 대기업 지원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자동차 신규 과제를 아예 없애버린 것이 중소·중견기업 R&D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았다. 대기업 입장에서 그만한 자금은 지원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 아닌가. 무엇이 더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일인지 신중히 한번쯤 고민해 봐야 한다는 얘기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