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료정보 표준화 10년째 시범연구만…또 산발적 표준연구 추진

각 부처가 의료정보 표준화 작업을 놓고 10년째 시범연구만 진행하며 공회전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이하 국표원)이 관련 시범연구를 진행하기로 해 효율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선진국은 범정부 차원으로 의료정보 표준화를 추진하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부처별 산발적으로 진행, 예산만 낭비한다는 지적이다.

24일 정부에 따르면 보건복지부·국토교통부·안전행정부 등에 이어 국표원도 보건의료정보 국가·국제표준 적용 가이드라인 개발 연구용역을 진행한다. 국표원은 국가·국제표준 적용 현황조사와 분석, 국내병원 적용을 위한 가이드라인 개발, 인증제도 조사 및 개선방안 등을 도출한다.

의료정보 표준화는 범정부 차원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이번 연구용역도 주무부처의 참여 없이 국표원 독자적으로 진행된다. 정작 의료정보 표준화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나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지정받은 보건의료 분야 표준화 협력센터(WHO-FIC)를 담당하는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은 이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다.

지난 2005년부터 의료정보 표준화 시범 연구는 복지부, 기표원 등 여러 기관서 개별적으로 7~8회 진행됐다. 국토부도 지난해 국가 u시티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면서 개별적으로 의료정보 표준화 시범연구를 진행했다. 지난 10년간 여러 차례 시범연구에서 진행된 국가·국제표준 적용현황 조사와 분석, 국내 병원 적용을 위한 가이드라인 개발 등이 반복해 실시되는 이유기도 하다.

의료정보 분야 전문가는 “정부가 지난 2005년부터 개별적으로 의료정보 표준화를 위해 쏟아부은 예산만도 수천억원에 이른다”며 “그러나 의료정보 표준화 적용은 전혀 진전된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의료정보 표준화 연구가 매번 산발적으로 시범연구에만 그치고 마는 것은 범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가 그 역할을 수행하게 했지만, 실질적으로 성과를 만들지는 못했다. 현 정부 들어 산업융합위원회를 설치, 의료정보 표준화를 담당토록 하는 논의는 있었지만 본격적인 추진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복지부가 의료정보 표준화를 위해 범정부 전문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지만, 법·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해 실제 구성 시점은 미지수다. 미국이나 일본 등은 대통령이나 총리의 선거공약으로 범정부 차원에서 의료정보 표준화가 이뤄지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두세 부처조차도 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정보 표준화를 위해 관련 법 개정이나 제정을 추진한 후 표준화전문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의료정보 표준 적용을 위한 국책 연구과제가 분당서울대병원 등 특정 병원에 몰리는 것도 표준화 적용이 확산되지 못한 배경이다. 의료정보 표준화가 병원 수익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의료계 경영진의 인식도 걸림돌이다. 의료정보 표준화를 추진하는 정부부처 담당자의 잦은 인사이동도 시범연구만 반복하게 하는 원인이다.

국표원 관계자는 “3~4월에 의료정보 표준화 연구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복지부, 산업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참여하는 정책협의체를 구성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