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시뮬레이션 연구는 실제 실험만큼 중요해지고 있다. 시간과 비용을 대폭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3년 노벨화학상도 실험실이 아닌 컴퓨터를 이용해 복잡한 화학반응을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하는 연구법을 개발한 이들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상위원회는 2013년 노벨화학상 공동 수상자로 마틴 카플러스, 마이클 레빗, 아리에 워셸을 선정했다.
이들은 복잡한 화학반응을 컴퓨터로 이해하고 예측하는 일종의 ‘사이버스페이스 실험’을 고안해 촉매나 신약, 태양전지 개발 등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카플러스는 단백질 같은 생명 분자의 빠르고 복잡한 화학반응과 분자 조합을 계산하고 예측하기 위해 컴퓨터 기반의 다층적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참(CHARMM)’을 개발했다.
레빗과 워셸은 이 프로그램의 다양한 응용 분야를 개척했다. 현재 세계 화학자들은 ‘참’을 사용해 식물의 광합성 작용이나 촉매를 이용한 배기가스 정화 같은 복잡한 화학공정을 파악하고 있다.
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만개 이하의 원자로 구성된 작은 물질에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주로 무기물이나 작은 유기물 소재 연구에만 사용됐다.
최근 이런 한계를 뛰어넘어 유기물과 무기물 합성소재 연구가 가능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개발됐다. 덕분에 수십일이 소요되던 구조의 구성 원리를 알아내는 실험기간이 대폭 줄어들어 한 시간도 안 되서 실험 결과를 알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허가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다원물질융합연구소(소장 이광렬) 계산과학연구단 박사와 비즈너 미국 코넬대(Cornell) 재료공학과 교수는 저비용으로 새로운 나노소재 제조방법을 개발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개발해 새로운 형태의 나노입자 기반 소재를 만들었다. 만들어진 소재는 매우 넓은 표면 면적을 지닌 다공성 금속소재로 우수한 촉매특성과 높은 전기전도도를 가진다.
KIST는 자기조립 기반 나노소재 제조방식은 향후 촉매 개발과 다양한 전자소재로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저온 공정을 기본으로 한 제작방법을 활용해 향후 3D프린팅과 결합이 용이하고, 이를 통해 혁신적인 다층소재 개발에도 유용하게 쓰일 전망이다.
연구진은 분자의 자기조립 특성을 이용해 새로운 소재를 개발했다. 자기조립은 자연계 많은 물질들이 외부의 특별한 도움이나 간섭 없이 스스로 구조를 만드는 특성이다.
연구진은 물을 좋아하는 특성을 지닌 부분과 물을 싫어하는 특성을 지닌 부분이 공존하는 고분자(블록 공중합체)에 나노크기의 금속입자를 섞어 자기조립을 통해 새로운 나노소재를 만드는 연구를 시뮬레이션했다. 이러한 자기조립 과정은 분자 간 매우 복잡한 물리화학적 작용을 하면서 새로운 구조를 형성했다.
연구진이 개발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법은 소재 구조를 컴퓨터 계산으로 정확하게 예측했다. 실험으로 알아내기 어려운 구조의 구성 원리도 밝혀냈다. 이는 기존 실험으로는 30일 이상 걸리는 작업을 수십분 만에 구현한 것이다. 소재개발 비용을 수백배로 줄였다. 연구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2월 21일자에 게재됐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