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선공업의 시작은 1960년대부터다. 그동안의 노력으로 이제 한국 전선업계는 세계에서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일본 스미토모와 히타치전선에서 기술 지원을 받아 양적인 성장을 이뤘다. 1990년대 이후에는 기술개발을 독자적으로 추진해 한국산 전선을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게 하고 브랜드화에도 성공했다. 전선업계 몸담았던 수많은 종사자의 수고와 단체로는 전선공업협동조합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전선업계가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당했던 것은 제품 신뢰성과 안전성의 확신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인 것 같다.
국가 기산 산업으로 전선공업은 에너지와 정보를 전달하는 핏줄과 같은 역할을 한다.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현실이 어떠한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전선은 제조업으로 먼저 하드웨어에 해당되는 제조설비와 원자재, 소프트웨어의 생산 기술로 간단하게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전선 종류에 따라 원자재와 제조 설비가 서로 다른 조건에 의한 생산 기술은 요즘 거론되는 핵심기술이다. 이뿐 아니라 전선 설계기술과 시험평가 기술도 역시 없어서는 안 될 영역이다.
전선 제조는 설계-제조(원자재 선택)-시험 평가로 계속 이어지는 시스템 생산기술로 장치산업이라 한다. 일부 원자재를 제외한 모든 생산 기반은 국내 기술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전선 품질도 세계적인 수준에 이른다. 이는 국내 전선업계의 수출실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과 함께 전선 산업은 고용창출은 물론이고 에너지와 정보 전달에 어려움이 없도록 충분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우리 경제적인 규모와 전반적인 산업기술 수준에 비춰 보면 국내 전선산업은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전선기술은 세계적이지만 지속적으로 선도하기 위해서는 전문 인력 부족도 예측되며, 금융 비용을 고려한 원가구조는 다국적 기업과 비교해 개선의 여지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난해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원자력 발전소용 전선의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기술력 문제라기보다는 만들어진 제품이 끝까지 사회적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인식부족에서 야기된 결과라고 본다.
지금까지 전선업계는 전선을 공급하기 위해 국내 기술로 품질 좋은 우수한 제품을 생산했다. 하지만 신뢰성과 안전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관리가 부족했다는 지적을 피해갈 수 없다.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우수한 기술보다 이제는 신뢰성을 가질 수 있는 관리시스템 도입과 함께 끝까지 안전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전선에 요구하는 신뢰성과 안전성은 절대적이며, 생산 기술과 분리될 수 없음을 이해하고 생산하는 자세도 요구된다. 1980년대에 원자력 발전소용 전선 평가와 시험 방법을 위해 노력을 했고, 신뢰성에 관한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소에서 요구하는 안전성과 관련한 체계적인 이해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어떤 이유보다도 30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전선은 잘 만들지만 고객이 요구하는 신뢰성과 안전성에 대한 기술자들의 인식 부족은 반드시 짚고 넘어갈 문제다.
개선을 위해 외국과 같이 전문위원회나 기술위원회의 적극적인 활동을 제안한다. 가능하면 문제의 중심에 있는 회사만이 아니라 전 회사들이 어떠한 새로운 도약을 해야 되는지 단합된 노력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덧붙여 전선은 신뢰성과 안전성이 요구되는 만큼, 기술의 가치를 인정하는 가격 현실화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박대희 원광대 교수(전기응용신기술센터장) parkdh@w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