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칫덩이 폐 셋톱박스, 자원 가치 1500억 규모 ‘도시광산’으로 부상

가정의 골칫덩이인 폐 셋톱박스가 자원 재활용 시장에서는 1500억 원 이상 규모의 ‘도시광산’으로 떠오르고 있다. 광물자원 뿐만 아니라 부품 가치가 높게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후 처리에 대한 관련 규정이 없어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11일 스크랩(자원순환)업계에 따르면 케이블TV·IPTV·위성방송 등 유료방송서비스가 진화하면서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약 1500만대 가량의 고화질(HD) 셋톱박스가 폐기처분(재활용 포함)될 것으로 분석됐다. 업계는 셋톱박스의 수명을 5년으로 보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2008년 보급이 시작된 HD 셋톱박스 1500만대의 폐기가 올해 시작된다. 폐 HD셋톱박스는 1대당 평균 1만원의 가치를 평가받고 있어 적어도 1500억원 규모의 자원순환 시장이 형성되는 셈이다.

여기에 아직 표준화질(SD) 셋톱박스의 폐기 물량도 150만대가 남아 있어 시장 규모는 한층 커질 전망이다. SD 셋톱박스는 2002년 SD로 사업을 시작한 KT스카이라이프 36만대, 2004년 사업에 나선 씨앤앰 36만대, 2005년 시작한 CJ헬로비전 20만대 등 전국적으로 150만대가 남아있다.

폐 셋톱박스 물량은 꾸준히 확대됐다. 2012년 연간 2만~3만대 수준이던 KT가 지난해 5만대로 늘렸고, 연간 5만대 수준이던 한 MSO는 지난해 11월부터 2월 사이에만 15만대를 폐기하기도 했다. 씨앤앰 관계자는 “새 방송 서비스가 잇따라 등장하며 구형 셋톱박스 폐기가 느는 추세”라고 전했다. 여기에 850만명인 아날로그케이블 가입자들이 향후 디지털로 전환하면 폐 셋톱박스의 전체 규모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스크랩 업계는 셋톱박스를 매력적인 수익원으로 여기고 있다. HD 셋톱박스에는 하드디스크(HDD), 메모리와 같은 돈이 되는 부품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최근 LG유플러스가 내놓은 5만대 규모의 셋톱박스 폐기 입찰에는 10개 업체가 경쟁하기도 했다.

스크랩 업체는 폐 셋톱박스에서 부품을 추출해 광물자원을 뽑거나 부품을 재생한 뒤 팔아 수익을 낸다. MSO 물량을 처리하는 스크랩 업체 관계자는 “HDD·메모리와 같은 부품들을 전량 중국·동남아시아에 수출한다”며 “300GB HDD는 1만3000원에 팔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폐 셋톱박스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현행법에 따르면 셋톱박스는 사업자들의 의무 회수품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환경부 자원재활용과는 “의무대상 품목이 아닌 경우에는 사업자 자율에 맡기고 있어 연간 처리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소개했다.

유료방송 업계는 셋톱박스 재활용 비율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최성권 씨앤앰 물류센터장은 “고칠 수 있는 것은 새 제품과 다를 바 없는 성능으로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며 “재활용 비율을 높이면 사업자는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자원낭비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KT 관계자는 “IPTV의 사업 안정화와 MSO의 HD전환이 비슷한 시기에 몰리며 셋톱박스 교체 수요가 늘고 있다”며 “구형 셋톱박스를 개조해 새 기능을 넣는 등 폐기 물량을 줄이려 노력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