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가 잘 되게 하려면 어느 부문이든 다 잘해야 합니다. 하지만 텐트를 치면 윗단이 뾰족하게 나오게 마련인데, 다 같이 수평을 맞추라 한다면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과학기술특성화대학 총장에게 듣는다]<5·끝> 강성모 KAIST 총장](https://img.etnews.com/photonews/1403/542509_20140318133731_481_0002.jpg)
창조경제 실현에 본격 시동을 걸고 나선 강성모 KAIST 총장의 ‘KAIST 육성론’의 기저에 깔린 기본 시각의 일단이다. 달리 말하면 끝(글로벌 톱10 진입)이 저만치 보이는 KAIST가 이 추세를 몰아가기 위해서는 정부의 집중 투자와 전략적인 장려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미국 MIT는 한참 자다 일어나도 1등이라는 소리를 합니다. 이미 인식이 그렇게 박혀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KAIST도 바이오 분야의 이상엽 특훈교수나 오는 5월 제주서 열리는 전기전자엔지니어링협회(IEEE) 무선전력전송콘퍼런스에 관여하고 있는 세계적인 전자파 전문가 김정호 전기및전자공학과 교수, 아시아 최초로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 학회장에 선출된 유회준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 등은 이미 세계 최정상급입니다.”
확실하게 뭔가 보여줄테니 정부도 확실하게 밀어 달라는 게 요지다. 새로운 교수들이 공동연구장비가 부족해 연구를 제대로 못하는 일은 최소한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KAIST는 전자, 기계, 물리 분야 등이 부분적으로 세계적인 수준인 반면에 뇌과학과 헬스사이언스, 의약 등은 다소 취약합니다. 그래서 만들어 놓은 것이 세종시 의과학연구원과 연구병원 설립계획입니다. 하지만 정부 도움 없이는 조성 자체가 어렵습니다.”
강 총장은 KAIST가 글로벌 톱10에 들어가는 데는 10년이나 20년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봤다. 그러나 바이오 분야처럼 스타급 교수들이 포진해 있다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논리도 내놨다.
“KAIST 공학 분야는 세계 20위권 언저리에 도달해 있습니다. 원자력공학 분야 등은 평가를 받지 않아서 그렇지 세계 최정상급입니다. KAIST를 국가브랜드로 키워야 한다고 봅니다. 잘하는 건 더 잘하도록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대학 육성에는 R&D도 마찬가지지만 정권의 변화에 의해 쉽게 정책이 바뀌기보다는 지속성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말도 내놨다. 그래야 노벨상도 나올 것이라는 것이다.
강 총장은 최근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한다는 ‘2배 뛰기론’을 강조하고 나섰다. 오는 4월 7일 개소할 예정인 ‘스타트업 KAIST 스페이스’도 당초 120㎡ 규모서 678㎡ 규모로 5배 이상 키워 놨다. 기왕 할 거라면 똑소리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학생뿐 아니라 일반인의 자유로운 네트워킹과 창의적인 아이디어 탐색, 검증, 창업 실전형 교육과 창업 선배의 멘토링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KAIST 기업 목표는 글로벌 시장이다. 프로젝트명 ‘엔드 런(End Run)’은 기업이 한번쯤은 넘어야할 ‘죽음의 계곡’을 피하고 글로벌 시장에 바로 진출해보자는 취지로 미식축구 용어를 빌려 왔다.
“기술사업화에도 이제는 혁신이 필요합니다. 기존 이론과 모델을 혁파할 새로운 접근모델을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강 총장은 이 같은 성공 사례로 호주의 ‘의료카드’를 들었다. 칩이 들어있는 명함 크기의 의료카드에는 환자 개인의 병력과 처방정보가 다 들어있는데, 이를 사업가 혼자 개발하지 않고, 의사들과 직접 손잡고 개발했다는 것이다. 마켓 내에 있는 사람이 처음부터 제품 개발에 관여해 빠른 제품화 속도와 비용 절감의 장점을 언급한 것이다.
과거에는 연구실에서 기술을 개발한 뒤 기업 연구소에 넘겨 다시 양산화를 하는 과정을 거치고, 공장으로 보내 시연하는 절차가 필요했다면, 이제는 공장에 직접 연구인력을 투입해 세팅과 연구를 동시에 진행하는 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인텔이 대표적이다. 인텔은 R&D팀을 공장에 직파해 제품을 설계하기 때문에 그만큼 공정도 줄여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혁신모델을 가르쳐 주는 일을 조만간 새로 만들 ‘기업가정신 대학원(Entrepreneurship)’과 연계해 풀어갈 것입니다.”
KAIST에는 이미 창업 성공사례도 나왔다.
배현민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는 반도체 칩 저전력 설계기술로 ‘테라스퀘어’를 창업했다. 기존 대비 전력소모가 3분의 1에 불과한 칩설계 기술이 기반이다. 삼성전자와 미국 등에서 인재 15명이 모여 일하고 있다. 벌써 이 기업을 사겠다는 기업도 나왔다.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크고 있는 아이카이스트(대표 김성진)는 최근 자체 개발한 터치 칩이 국내업계 최초로 MS 윈도8.1 하드웨어 신뢰성 인증을 획득해 관심을 끌었다.
과학기술지주회사도 추진하고 있다. 곧 그림을 내놓을 예정이다. 우선 대표는 김영호 전북기술지주 대표가 맡기로 했다. 신원조회 등의 절차만 남았다.
KAIST의 수준을 올리는 것도 있지만 산업에도 기여해보자는 복안도 있다. ‘공학교육 혁신안’이다.
새로운 교육·연구 혁신 모델로 실사구시형 공학교육의 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미 내외부 각계 인사가 참여하는 교육·연구혁신위원회도 설치했다.
그 동안의 논문위주나 발명특허 수 등을 평가 했지만, 쓸 만한 건 많지 않고 학생들은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겸허히 수용했다.
오는 4월말까지 문제점을 찾아 공청회를 마련한 뒤 5월 초안마련 과정을 거쳐 6월 확정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운집해 있는 대덕에 대해서도 충고했다.
“대덕에는 실리콘밸리보다 국립연구기관이 더 많지만 잘 안 되는 건 상호협력과 오픈마인드는 덜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기관 간 벽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실리콘밸리엔 스탠퍼드대학이 있고, 대덕에는 KAIST가 있습니다. 아무 때나 원활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풍토가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