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수정구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는 김종규씨(43세)는 23년간 제과·제빵 한 우물만 파왔다. 그의 장기는 천연효모를 이용한 건강빵이다. 크랜베리를 이용한 효모 배양도 직접 한다.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사는 김씨의 배우자인 우크라이나 출신 안젤리나씨(37세)의 장기는 케이크 데코레이션이다. 두 사람은 제과·제빵이라는 공통점 덕분에 만났다. 김씨의 제과점이 있는 태평3동 전통시장에 자리 잡은 지는 5년쯤 된다.
두 사람은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빵을 만든다고 자부하지만 대기업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늘면서 손님을 모으는 게 점점 쉽지 않아졌다. 사람을 써서 전단을 돌려보기도 했던 김씨의 가게에 최근 ‘스마트폰을 보고 찾아왔다’는 젊은 고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김씨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모바일 쿠폰도 발행하고 신상품이 나올 때마다 고객에게 메시지도 보내 단골손님을 관리한다. 이 모든 것이 재작년 성남시상권활성화재단과 씨이랩이 구축한 ‘스마일로(SMILERO)’라는 소상공인 스마트워크 시스템 덕분이다. 새로운 상품 출시 때마다 단골고객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쿠폰을 발행한 성과가 점점 나타나는 것이다.
김 씨는 “쿠폰을 발행하고 나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봤다며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며 “스마트폰의 페이스북, 카카오톡으로 고객을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골목상권의 위기를 넘어라, 골리앗 무너뜨린 다윗 전략
소상공인 협업용 스마트워크 서비스는 소상공인 협업을 위한 재능거래(구인, 구직 서비스)와 상품 거래(공동 구매·판매 서비스)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시스템이 골격이다. 더 나아가 협동조합을 구성해 소상공인에게 필요한 상품, 원재료 등을 소셜 채널로 실시간 전파하고 소통하면서 의사를 결정하는 것도 돕는다.
전통시장에 위기가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도심 공동화·슬럼화 현상에 대형마트 확산으로 골목상권의 생존권 문제는 주요한 사회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
성남시 수정로 인근 중앙시장도 마찬가지다. 소상공인 협업용 스마트워크 서비스를 도입하기 이전 이곳은 시청 이전과 대형마트의 진입으로 한동안 침체기를 겪어야만 했다. 2009년 11월 시청이 이전한 이후 당시 200개 이상의 상점이 문을 닫았다.
성남시상권활성화재단이 만들어지고 출범 첫 해인 2012년 상인 의식 개혁과 자질향상 교육이 먼저 이뤄졌다. 2013년에는 상인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상인 및 업종 간 협업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며 스마일로 등 ICT를 활용한 경영방법을 본격적으로 전수했다.
강헌수 성남시상권활성화재단 본부장은 “기획 단계부터 전통시장 상인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간판이나 주차장 같은 시설을 바꾸는 것은 상점의 고유한 경쟁력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 마케팅 방법이나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다양하게 늘려주는 방법을 모색했다”고 말했다. 스마일로 사업이 시작된 배경이다.
스마일로 사업은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추진하는 스마트워크 활성화 기반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정부가 총괄 기획 및 예산 지원을 맡았다. 성남시상권활성화재단은 기존 재래시장 활성화 사업에 ICT를 접목할 수 있는 구체적 기획 및 개발을 지원했다. 여기에 빅데이터 등 소셜미디어 분석 솔루션을 보유한 전문기업인 씨이랩이 서비스 개발 및 인프라 구축에 참여했다.
2012년 처음으로 소셜 기반 상점 상품정보를 모바일환경에서 서비스(쿠폰정보, 할인정보, 고객정보 등)가 가능하도록 했다. 2013년에는 전통시장 및 골목상권 소상공인 협업서비스로 상품거래(구매, 판매), 재능거래(구인, 구직), 협동조합 지원(정보제공, 의사결정협업 등) 등 서비스를 모바일이나 인터넷 환경에서 가능하도록 구현했다.
한재인 씨이랩 사업본부 팀장은 “단순히 앱을 이용해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쿠폰을 발행하는 것만이 아니라 홈페이지를 들어가면 어떤 업종의 가게가 인기가 있는지부터 가입자가 어제에 비해 오늘 얼마나 늘었는지 등 빅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상인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 기술 공부하고 SNS 소통하는 전통시장 상인
우리나라 자영업자 규모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급격히 늘었다가 2010년을 기점으로 줄어들었으나 최근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고 자영업자의 길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러나 자영업으로는 5년간 생존할 확률이 20%에도 미치지 않고 자영업자 한 사람당 평균 1억원의 빚을 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골목상권 소상공인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것은 상인 그 자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자영업자로 내몰리며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지만 발전이 가장 더디게 이뤄지는 것도 상인 그 자체라는 지적이다.
대형마트의 생산·관리·판매·유통 시스템에 대항하기에 과거의 주먹구구식 운영관리 방법은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ICT가 접목됐다. 상점에 소비자가 스스로 찾아오고 단골을 관리할 수 있는 경영을 해줄 수는 ‘툴’이 만들어졌다.
특히 스마일로 사업은 처음부터 정부 주도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수요자 스스로 문제해결 방법을 찾아 나서면서 정부 지원을 받게 된 성공사례다. 성남시 전통시장에 기반을 둔 스마일로는 적극적 상인 교육 및 지속적 협업 시스템 구축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강헌수 본부장은 “50·60대 상인이 대부분이라 SNS는커녕 스마트폰 사용조차 어려운 사람도 많았다”며 “재단은 모든 사업에 우선해 상인교육을 실시하고 재단에서 펼치는 모든 개별 점포 단위 사업에서 상인대학 이수자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원칙을 실현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많은 상인이 외면하고 심한 경우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었지만 효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성남시에서 전국 최다인 1000명이 넘는 상인대학 졸업생을 배출했다. 지자체 최초로 독자적 상인대학원 과정을 만들어 상인리더 양성 및 강소상인 양성 기틀을 마련했다. 휴·폐업에 따른 빈 점포가 2011년 260개에서 2012년 155개로 40% 감소했고 점포당 하루 매출은 10% 증가했다.
시범사업을 진행한 성남시 수정로 상권이 회복세에 들면서 다른 지역으로 확산도 이뤄지고 있다. 부천시 원미 부흥시장에 서비스 구축이 완료됐으며 부산 동래시장, 부평 깡통시장, 창원 상권 활성화 구역 등과 사업을 협의하고 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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