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과학기술부에서 유전체연구를 지원하는 대형사업이 시작됐을 때 저마다 유전체연구를 한다며 다들 연구비 따가기에 바빴다. 스스로 최고라며 다른 연구자를 일방적으로 비방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질병 관련 유전체연구는 복지부에서 해야지 왜 과학기술부(현 미래부)에서 지원하느냐는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유전체연구 출발점부터 삐걱거리기도 했다.
일부 과학기술자는 미국에서 인간게놈프로젝트 완성을 알리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전체연구는 그만하고 단백체 연구에 모든 연구비를 투입해야 한다고 떠들어대기 시작했고 결국 국가차원의 유전체연구는 제대로 기 한 번 펴보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상태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것이 바이오산업의 고속도로로 불리는 ‘유전체 연구’의 대한민국 현주소다.
새로운 유전체분석기술 개발이나 유전자 자원 확보, 유전정보의 체계적 구축 등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유지관리가 필요한 일은 대학이나 산업체보다는 공공기관에서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고 집중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는 ‘뜻있는’ BT 전문가의 목소리는 일부 힘있는 사람들에 의해 파묻혀 버렸다.
지금도 유전체 분석은 벤처기업이 더 잘 할 수 있으니 국가 차원 유전체연구소는 필요 없다는 논리가 대세처럼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유전체연구는 국가 차원에서 제대로 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지금이다.
의료파업의 핵심주제인 원격진료를 비롯한 질병진단, 치료, 예방 등은 각 개인의 유전정보를 얼마나 정확이 알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부터라도 국민의 유전정보를 DB로 모으고 빅데이터화해야 한다. 이는 곡물이나 치료약을 수입하듯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 올 수 없는 소재기 때문이다.
유전체 분석기술은 15년 전에 비해 수만배 빨라졌다. 13년 걸리던 한 사람의 유전체 해독은 이제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병원에서의 진료는 곧 내 유전자정보를 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는 거부할 수 없는 대세다. 이를 위한 시스템이 빨리 확립될수록 질병으로부터 겪는 환자들의 고통은 줄어들 것이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다부처 유전체 연구사업 계획’을 보고 유전체 연구자의 한사람으로서 참으로 암담한 심경이었다. 부처마다 유전체분석 대상을 조금 더 확대하는 것 외에는 15년 전과 달라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농림부, 해수부, 복지부, 미래부, 산업부 등 저마다 원대한 계획을 내놓았지만 이들이 제대로 그 결과를 얻으려면 서로 간 협조가 필수불가결한데 과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분석한 데이터들을 한군데에 모아 상호 비교 분석해야 하는데 과연 이런 국가차원의 통괄시스템이 마련 될 수 있을까.
바이오는 이제 IT와 접목돼야 생산성이 높고 그 가치를 제대로 발휘한다. IT와 융합돼 유전체정보라는 고속도로를 깔아 놓아야 그 위에서 바이오산업이 가속페달을 밟을 수 있다.
창조경제는 새로운 먹거리 창출이다. 모든 생물체가 가지고 있는 각각의 유전정보를 잘 이해하면 새로운 먹거리인 신약이나 진단법, 새 에너지 등 다양한 산업물질의 생산이 가능해진다.
유전체정보 고속도로 설치를 제안한다. 중요한 것은 생산된 데이터를 통합관리하고 유지할 국가차원의 통괄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선에서 그 정책을 주관하는 각 부처담당 공무원의 현명한 판단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1~2년이 아닌 적어도 10년 이상을 내다본 과학정책 차원에서 답을 내야 한다.
과학기술자는 자기 것이 다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옥석을 가릴 판단력을 지닌 일선 공무원이 능력을 발휘해야만 국가 과학발전의 길이 제대로 열린다.
유전체 연구 분야에선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일선 담당 공무원들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