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연은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소관부처가 바뀌며 구조조정의 대상이 돼 왔다. 이공계 출연연이 국가과학기술 산업을 리드하지 못할 뿐 아니라 국가 R&D투자 대비 정부가 기대하는 만큼의 성과가 미흡하다는 평가에 따른 것으로 보여진다.
출연연에 연구회 시스템이 도입된 것은 IMF(국제통화기금) 체제 이후다. 도입 배경은 경쟁을 통한 기술개발 성과 향상과 기관 운영의 독립성과 자율성 확보, 연구사업의 중복투자 차단 등이다. 각 부처에 산재된 연구기관을 통합함으로서 부처 간 이기주의와 과도한 간섭의 종적 연결고리를 끊고 비교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국무총리실에 연구회를 배속해 부처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출연연간 높은 담벼락을 허물어 기관 간 협동연구를 유도하며, 시설장비와 인력을 공유해 연구개발 예산을 효율화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연구회는 늘상 옥상옥이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연구회의 기획역량 부족, 지렛대역할 결여, 중복성 연구영역 및 조직과 인력의 탄력적 조정능력 부족, 국가기술혁신체제상의 연계미흡 등이 원인이다. 이러한 여론에 따라 정부가 매번 바뀔 때 마다 출연연은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거론돼 왔다.
출연연은 국가 R&D의 중장기적인 목표를 수행해야 하는 고유기능보다는 부족한 인건비 수주에 매달렸고, 연구결과의 질이 낮아 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왔다.
최근 5년간 출연연 R&D 투자비 대비 기술료 수입 비중은 3.5%다. 미국 공공연구소(19.5%), 독일 프라운호퍼(7.7%)에 비해 현저히 성과가 낮다. 조직 개편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SIR월드리포트가 평가한 세계연구기관 논문 성과를 보면 세계 1위는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다. 이곳은 인력이 2만5000여명에 달한다. 독일 막스플랑크 2만명, 프라운호퍼 1만5000명 순이다. 우리나라는 ETRI와 KIST가 600위권으로 나타났다.
물론 평가지표상에 단순 논문평가이긴 하지만 선진국의 연구단체가 칸막이를 허물고 연합운영하고 있기 때문으로 논문 성과가 좋은 것으로 보여진다.
반면 우리나라 출연연은 평균 인력이 400∼600명으로 임계규모가 미국이나 유럽의 OECD국가 연구기관에 비해 훨씬 미치지 못한다.
과학기술은 시장경제의 경쟁적 목표관리만으로 창조적 기술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과학기술개발의 속성은 자율적이고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통해서만 창의적 발상이 기술혁신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21세기 과학기술의 키워드는 융·복합기술(Fusion Technology)이다. 과학기술은 하루가 멀다 하고 진화하고 있다. 공상과학 만화에서나 보아왔던 이야기들이 반세기도 안 되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IT, BT, NT 등 이종기술 간의 영역이 해체되고 빅데이터, 3D프린터와 같은 기술들은 기존의 한계기술을 극복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예고하고 있다.
과거의 학제적인 분류 체계가 이제는 다학제적(Interdiciplinary)으로 기술의 경계가 이미 무너져 버린 것이다.
만시지탄이긴 하지만 최근 정부는 출연연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해놨고, 이와 관련 이공계 출연연의 지배구조에도 변화 조짐이 보인다.
선진 R&D 체계를 보면 영국은 연구개발의 독립성을 담보하기 위해 정부는 총액 예산만 결정하고 연구비의 집행은 연구회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할데인법’에 명시해 놨다. 독일은‘하르나크법’에 의해 정부로부터 자율과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예산의 위임, 기관의 신설, 통합 그리고 해산 등에 관한 권한을 보장받고 있는 것이다.
출연연이 거듭나기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하면 첫째 독일이나 일본, 프랑스처럼 연구회와 소관 연구기관들의 법인격을 하나의 독립법인으로 묶는 것이다. 둘째는 정부가 정한 출연(연)에 묶음(lump sum)예산으로 이사장에 위임해 전문가들로 하여금 설계토록 해야 한다. 셋째는 25개 연구기관을 4~5개 정도의 소그룹으로 묶어 관리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구원들의 창의성을 끄집어 낼 수 있는 자율적 연구환경을 통해 R&D성과를 극대화 할 수 있도록 선진화된 출연연 관련법 개정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양윤섭 대덕과학기술사회적협동조합 이사 yys62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