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머신용 모니터를 생산하는 A사는 고객 요구에 따라 다양한 크기의 디스플레이를 사용한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제품도 있고 원형에 가까운 디자인도 있다. A사는 이렇게 다양한 디스플레이를 직접 공급받는 것이 아니라 재가공한다.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중소기업 요구에 일일이 맞춰줄 수 없으니 ‘잘라서 쓰라’는 식이다. 버려지는 부분이 절반 가까이 된다고 해도 A사는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파는 대로 셀을 가져와서 가공하는 수밖에 없다.
시장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활로 모색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중소 세트 업체에 대기업인 디스플레이 기업은 높은 ‘벽’이다. 중소기업 맞춤형 디스플레이 수요가 많아지고 있지만 이를 위한 공급 체계는 정착돼 있지 않다.
LCD TV 시장이 침체되면서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디지털사이니지·의료기기 등 새로운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들 기기는 TV와 달리 산업용에 주로 쓰이며 아직은 다품종 소량인 경우가 많다. 종사하는 기업 역시 대부분 중소 규모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싶어도 구매 역량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다. 이로 인해 기존 TV용이나 모니터용 셀을 그대로 가져다가 가공해 사용할 수밖에 없다.
성장성이 기대되는 전자칠판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전자칠판은 대형 TV와 같은 사이즈의 패널을 사용해도 문제가 없지만 보급형 전자칠판 시장에 특화된 제품을 찾기는 힘들다. 대형 초고화질(UHD) 패널은 지나치게 고가여서 일반 학교에서 이를 들여다 사용하기에는 큰 부담이다. 10포인트 정도되는 멀티터치 기능 등은 굳이 필요하지 않은 곳도 많지만 고급형·보급형 정도로 나눠져 있을 뿐 맞춤형 패널을 주문하기는 힘들다.
디지털 사이니지 역시 아직은 시장 규모가 작아 규격화돼 있다. 야외 시인성을 강화하고 햇빛에 강한 디스플레이 정도가 그나마 특화된 제품이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시장에는 멀티프로젝트웨이퍼(MPW)가 활성화돼 있다”며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틈새시장을 발굴하려는 노력 자체가 없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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