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펴고 야외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 하지만 봄 날씨는 상당히 변덕스러워 어떤 차림으로 집을 나서야 할지 종잡기 어렵다. 특히 산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에 소비자는 여러 가지 상황에 적응력이 뛰어난 재킷을 찾고 있다. 컨슈머저널 이버즈(www.ebuzz.co.kr)는 아웃도어 시장 동향과 트렌드, 신소재로 무장한 아웃도어 봄철 재킷을 살펴봤다.
황민교 이버즈 기자 min.h@ebuzz.co.kr
◇시장 동향
지난 몇 년간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오며 세계 2위 규모로 우뚝 올라섰다.
패션업계의 불황 속에서도 나홀로 성장을 거듭했다. 여가 생활에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장비에 신경 쓰는 한국인의 특성이 겹치며 시장 성장을 주도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하지만 올해는 아웃도어 업계에 여러 모로 변동의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업체 수가 늘어나며 경쟁이 심화되는 반면에 성장률은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패션연구소는 올해 아웃도어 시장 규모를 지난해 6조9000억원보다 16% 증가한 8조원으로 예상했다. 이는 올해 전체 패션시장 성장률인 4.4%를 크게 웃돌지만 전년 25% 성장보다는 9%P가량 줄어든 수치다.
반면에 판매액 순위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상위권과 중위권 할 것 없이 어느 한 곳도 쉽지 않다. 11년째 1위 유지에 성공한 노스페이스는 매출액 7000억원을 돌파했음에도 코오롱스포츠, K2, 블랙야크로 이뤄진 2위권 그룹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지난해 코오롱스포츠와 K2는 6800억원, 블랙야크는 이에 조금 못 미치는 670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1위와 불과 200억~300억원 차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연도에 노스페이스의 아성이 깨진다는 추측도 난무하고 있는 상황이다. 업체 입장에는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빅5에 들려는 중위권의 싸움도 만만치 않다. 순위 변동만 놓고 볼 때 눈에 띄는 곳은 밀레와 아이더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밀레는 컬럼비아를 제치고, 아이더는 라푸마를 따라 잡았다. 네파는 작년 성장률이 다소 주춤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5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나친 순위 경쟁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도 존재한다. 패션 산업에서 매출액 순위로 줄을 세우는 곳은 아웃도어밖에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업체들이 순위 경쟁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1위’ 타이틀이 붙으면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순위=품질’이라는 공식이 유효하다.
문제는 공개된 매출의 산정방식이 업체마다 달라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급속도로 성장한 모 브랜드는 할인행사를 벌인 뒤 정가대로 매출액을 잡는 편법을 써서, 매출액만 높고 수익은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또 다른 업체는 본사에서 물건을 사가는 완전 매입 방식을 취해 판매금액이 그대로 매출액이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몇 년 전부터 통일된 매출 산정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순위에 민감한 업체들은 투명한 매출 공개를 꺼리고 있다. 소비자는 단순히 순위에만 비중을 둘 것이 아니라 직접 제품을 살펴보고 꼼꼼하게 구매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마켓트렌드
이제는 ‘집 밖에만 나가면 아웃도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일상복과 아웃도어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등산복 이미지에서 탈피해 도심에서 편히 입을 수 있는 옷으로 거듭나고 있다.
삼성패션연구소는 “익스트림 아웃도어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입을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형 아웃도어가 새로운 캐주얼 영역을 개척하면서 자리를 잡았고 스포츠, 골프, 키즈 등으로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장하면서 전체 패션시장에 더욱 큰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봄 아웃도어 아우터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맵시를 살린 디자인과 화려한 색상이다. 소매나 허리를 넉넉하게 만들기보다는 몸에 딱 맞는 디자인이 주를 이룬다. 그 덕분에 세련된 연출이 가능하다. 눈여겨볼 점은 골반 위쪽으로 떨어지던 짧은 기장에서 트렌치 코트와 야상 점퍼 등으로 디자인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뛰어난 기능성 소재를 사용해 쾌적함까지 제공한다.
전문가용 재킷은 원색이 주를 이루지만 데일리룩으로 고안된 제품은 핑크, 민트, 블루, 오렌지, 퍼플 등 은은한 파스텔톤 색상이 적용된 게 특징이다. 산과 도심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업계 관계자는 “젊은 층을 겨냥한 아웃도어 스포츠웨어는 밝은 색상이 주를 이루고 복잡한 절개선을 최소화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디자인 못지않게 기능 면에서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봄철은 심한 일교차와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어떻게 옷을 입을지 고민이 된다. 겉옷을 입고 나와도 시시각각 달라지는 기온에 입고 벗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에 부피가 작고 초경량인 아웃도어 재킷이 경쟁적으로 출시되고 있다. 휴대하기가 용이해 야외활동 시 번거로움을 덜어준다.
아웃도어의 경쟁력은 기능성 소재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업체별로 소재 개발·연구에 더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모습이다. 방습, 투습, 방풍 기능을 두루 갖추면서 합리적인 가격을 갖춘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소비자 핫이슈
아웃도어 업체들의 자체 소재 개발 비중이 늘면서 프리미엄 재킷의 대명사로 알려졌던 고어텍스 원단 열풍이 한풀 꺾이고 있다. 미국 고어사가 개발한 고어텍스는 그간 아웃도어 상품이라면 필수적으로 쓰여야 하는 원단으로 인식될 만큼 영향력이 대단했다. 아닌 게 아니라 고어텍스 마크가 빠져 있으면 고품질의 상품으로 인정하지 않을 정도니 소비자 사이에서는 하나의 ‘공인 인증 마크’로 통해왔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깨지지 않을 것만 같던 ‘고어텍스 신화’가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11년에 접어들 무렵부터다. 한 시민단체의 품질 시험 결과 몇 차례 세탁하고 나면 방수 정도를 나타내는 내수도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어텍스보다 저렴한 원단과 비교했을 때 별반 차이가 없었다. 또 세탁 전부터 고어텍스보다 내수도가 더 높은 타소재 제품도 존재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산행 및 레저 활동에는 굳이 고어텍스 제품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자체 개발 소재를 사용하면 상당한 금액의 로열티를 고어사에 지급하지 않아도 돼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있고, 이렇게 남긴 수익은 품질 향상을 위한 연구비로 쓸 수 있다”며 선순환적 측면을 강조했다. 또 “단순히 가격 측면에서만 고려한 것이 아니라 각 브랜드가 추구하는 기술력을 구현하려는 부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고어텍스 사용 허가와 관련한 까다로운 조건을 맞추는 대신 자체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신소재 적용 봄철 재킷
업체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실제로 신소재를 사용한 제품은 고어텍스 원단과 유사한 기능을 갖추고 있으면서 가격은 30~40% 저렴하다. 이러한 이유로 업계에서는 고어텍스 이탈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완전한 ‘탈(脫)고어텍스’를 선언한 업체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컬럼비아, 네파, 블랙야크를 들 수 있다.
컬럼비아는 2011년 FW 시즌 이후부터 자체 개발한 기술 소재를 적용, 고어텍스 원단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있다. 방투습 기술인 ‘옴니드라이(Omni-Dry)’, 겨울철 보온 기술 ‘옴니히트’, 여름철 쿨링 소재 ‘옴니프리즈 제로’, 땀과 열기를 빠르게 배출하는 ‘옴니위크 이뱁’ 등 다양한 기술을 갖추고 있다.
컬럼비아는 최근 ‘옴니위크 이뱁’ 소재를 적용한 ‘프라임로즈 패스 재킷’을 선보였다. 방투습 기능과 땀 흡수배출이 뛰어나 일교차가 큰 봄부터 이른 여름까지 활용도가 뛰어나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그런가 하면 네파 역시 지난 2011년부터 자체 개발 소재인 ‘엑스벤트(X-vent) 시리즈’를 적용한 아웃도어 제품을 본격적으로 시장에 내놓고 있다. 엑스벤트 시리즈는 기능별로 상당히 세분화돼 있다. 방수·투습, 경량, 스트레치, 흡습속건 등 총 10가지의 기능으로 구성된다.
특히 투습과 방수 기능을 동시에 강화한 ‘엑스벤트 인터홀’ 소재는 기존 방수재킷의 단점을 보완한 것으로 방수 기능뿐만 아니라 열과 땀으로 발생한 수증기가 원활하게 배출되도록 했다.
엑스벤트 인터홀 소재를 적용한 제품으로는 ‘폴라 인터홀 워터프루프 재킷’이 있다. 안감에는 가볍고 부드러운 촉감에 땀의 흡수 및 건조가 빠른 쿨맥스 메시 소재를 사용했다. 몸에 달라붙지 않아 쾌적하고 편안한 움직임이 가능하다. 트렌드를 충실히 반영한 화사한 색상과 간결한 디자인도 인상적이다.
블랙야크도 고어텍스 이탈 대열에 적극 합류하고 있다. 2005년부터 자체 개발한 기능성 원단인 ‘아쿠아블록’을 적용한 제품을 생산해 왔고 2012년 본격적으로 ‘야크테크’ ‘야크쉴드’ 등을 선보이며 기능성 원단의 종류를 늘려가고 있다. 전체 의류 제품군을 기준으로 2012년 블랙야크의 고어텍스 취급 비중은 6.0%, 2013년에는 4.2%로 더 낮아졌다.
자체개발 기능성 소재 야크테크가 적용된 ‘B2XL3 재킷’은 초경량 3L 방투습 원단으로 발수도와 내수압이 고어텍스 원단 수준이라고 업체 측은 설명했다. 배색 디자인이 적용됐으며 비가 내리는 날에도 따뜻하고 쾌적하게 입을 수 있다.
박정훈 블랙야크 상품기획본부 차장은 “야크테크를 사용해 출시한 월드재킷은 3개월 만에 95% 이상 판매되는 성과를 거둬 앞으로도 자체소재 개발 비중을 늘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노스페이스의 하이벤트, 아이더의 디펜더, 제일모직 빈폴아웃도어의 큐브블록 등 고어텍스를 즐겨 쓰던 상위권 아웃도어 업체도 최근에는 자체 소재 개발에 힘쓰고 있다.
과거에는 아웃도어 제품에 고어텍스가 쓰이지 않으면 소비자의 눈길을 받기 어려웠다. 하지만 업체들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자체 개발 소재의 기술력이 고어텍스와 어깨를 겨룰 만큼 향상됐다. 소비자도 더는 고어텍스만 고집하지 않는다. 이런 연유로 자체 개발 소재는 아웃도어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판가름할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