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 중심축 ‘출연연’ 신임 기관장에 듣는다]<3>김종경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출연연구기관은 기관 고유업무를 체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래 선도형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연구 장비도 이중 삼중으로 사지 말아야지요. 국가가 요구하는 본래의 목적에 맞는 연구가 진행되는지 들여다봐야 할 것입니다.”

[창조경제 중심축 ‘출연연’ 신임 기관장에 듣는다]<3>김종경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지난 1월 취임한 김종경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은 과학기술계 출연연구기관의 미션 재정립에 필요성을 인정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동안 출연연은 기관장 관심도에 따라 R&D 방향을 좌지우지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 걸 포함해 중복 또는 효율성 부문을 자세히 들여다보자는 얘기다. 기관 간 협업으로 시너지를 낼 연구도 있지만 그런 부분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진단도 내놨다.

“기업체나 대학이 수행할 수 없는 연구도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국책연구기관보다 더 앞서가는 연구를 이들이 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그런 점에서 출연연의 역할을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김 원장은 국책연구기관이 기업체나 대학에 비해 뒤떨어지는 연구를 한다면 기관 정관을 바꿔서라도 방향정립을 다시 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 및 R&D 정책방향을 묻자 김 원장 눈동자가 빛났다.

“570년 만의 쓰나미가 일으킨 후쿠시마 원전사고야 말로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원전 안전성을 다시 한 번 짚어볼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자연재해 변수까지 R&D에 포함시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줬지요.”

김 원장은 “전기 공급이 끊어졌을 때 노심이 녹아내리고 수소폭발 등이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예측해 대처기술을 개발해야 했다”며 “일본은 중대사고에 대한 연구개발을 중지 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안타까운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안전에 대한 또 다른 숙제와 함께 우리나라에는 기회가 됐다고 강조했다.

“만약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일본은 세계 원전시장을 제패했을 것입니다. 미쓰비시와 히다찌·도요타가 세계적인 원자력 관련 회사 지분을 대부분 사들였기에 세계 원자력산업은 판도가 크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 사고로 바람이 엉뚱한 한국으로 불었다. 기술개발을 꾸준히 진행해온 덕이다.

김 원장은 “지금이 우리가 원자력을 세계화할 기회인데 이걸 스스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울 정도로 우리 기술이 앞서 있다”며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조차 이제는 공공연히 ‘코리안 테크놀로지(Korean Technology)’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원자력 안전성 100% 보장이라는 말은 존재하는 숫자가 아닙니다. 원자력 문제에 대처할 기술을 확보했느냐 못했느냐를 따져봐야지, 사고확률 100만분의 1에서 1이 0이 될 때까지 안전성을 보장하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세계적으로 안전성을 인정받는 기관으로 나아가자는 주장이다.

원자력연은 원전 안전향상 연구를 이달부터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단독 주관하는 OECD 원자력기구(OECD/NEA) 국제 공동연구(OECD-ATLAS)에 착수했다. 미국, 프랑스, 독일, 중국, 핀란드, UAE 등 세계 12~15개국이 참여해 원전 안전의 주요 이슈와 피동안전계통 등 새로운 안전개념을 실험으로 검증하는 프로젝트다.

원자력연이 구축한 ‘가압경수로 열수력 종합효과 실험장치’ 아틀라스(ATLAS)를 이용해 실험한다.

원자력연은 이외에도 주요 미션으로 파이로프로세싱-SFR(소듐냉각고속로)연계 기술과 초고온가스로를 이용한 원자력수소생산시스템 개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 기술 등의 연구를 수행해 왔다.

원자력 발전의 효율성에 대해 김 원장은 “경제성이 있다면 대체에너지도 좋을 것이다. 원자력에너지를 무조건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한 대안이 아직까지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며 “당분간은 원자력이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프랑스를 예로 들었다. 프랑스는 전체 에너지 소비 가운데 78%가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온다. 프랑스를 먹여 살리는 3대 산업이 항공우주와 고속철, 그리고 원자력이다. 자원이 없는 나라라는 점에서 우리와 환경도 비슷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해 미국 테라파워 쪽에서 국내에 SFR를 짓는 방안을 검토하며 교류를 했었는데, 지금은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테라파워 측이 나름대로의 설계능력과 자금을 갖고 있기에 전문가도 꽤 끌어 모았지 않나 싶습니다.”

아쉽긴 하지만 상호 교류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테라파워는 세계 최고 부자인 빌게이츠가 지분을 소유한 원자력 발전 자회사로 핵폐기물을 이용해 미국이 800년간 쓸 전력을 생산하는 차세대 원자력발전소 건립계획을 갖고 있다.

기관경영과 관련해서 김 원장은 신뢰와 긍지, 원칙 세 가지를 강조했다.

“기관 간, 동료 간, 상하 간 신뢰는 기본이라고 봅니다. 이직을 고민하기보다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직장이어야 합니다. 공정하고 투명한 경영, 원칙이 바로선 직장을 꾸리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기관이 설립될 당시에는 연구원들이 국가에 기여한다는 보람과 사명감이 강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는 얘기도 꺼내놨다.

김 원장은 해외유치과학자로 1986년부터 2년간 원자력연구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원자력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고 자부심이 대단했지요. 딱히 퇴근이라는 개념도 없었습니다. 먹고 자고 그저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자정 퇴근은 다반사였고요.”

지금은 그런 열정이 잘 읽히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는 얘기를 꺼내놓으며 그걸 다시 되돌려 보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