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진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의원이 발의한 ‘전기사업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이르면 4월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능형 수요관리를 바탕으로 절약한 수요 자원을 전력거래 시장에서 판매하는 것이 골자다. 전력 시장에서 수요와 발전 자원이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는 셈이다. 한전이 판매를 독점하는 경직된 전력 시장에 경쟁이 도입되는 단초이자 발전소 건설을 회피할 수 있다는 기대다. 관련해서 수요관리시장 운용과 관련한 다양한 논란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거대 전력판매 사업자인 한국전력의 사업 참여, 전력 사용자 정보공개 여부는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절약한 전기, 사고판다= 전력거래 시장은 발전사가 전력을 파는 전력시장과 정부지원금 주도의 지능형 수요관리(DR) 시장으로 구분된다. 지능형 DR 시장에는 15개 업체가 활동 중이다. 이들 사업자는 공장·건물 등과 계약을 맺고 전력 사용을 관리한다. 전력 공급이 부족하거나 소비가 집중되는 시간에 소비자 전력 사용량을 줄이고 이를 보상받는 것이 지능형 DR 시장이 돌아가는 기본 원리다.
전 의원이 발의한 전기사업법 일부 개정 법률안은 지금까지 독립적으로 운영해온 지능형 DR와 전력 거래 시장을 통합하는 것이 핵심이다. 수요 관리 사업자에게 전력거래소 회원 자격을 부여하고 전력 거래를 허용한다. 전력 거래 시장에서 발전사가 생산한 전력만 입찰할 수 있다면 앞으로는 절약한 전력도 참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력수요가 5000만㎾로 예상되면 지금까지 발전사로부터 이를 전량 구매·공급했지만 앞으로는 발전사에서 4500만㎾의 전력을 구매하고 소비자 수요 감축량 500만㎾를 구매해 수급을 맞출 수 있다.
전 의원 측은 수요관리사업자가 기업 공장, 건물의 전력수요를 감축해 연간 200만㎾ 이상의 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원전 2기가 생산하는 전력량이다. 정부가 6차 전력수급계획에서 밝힌 발전소 신규 설비투자비용은 1만㎾당 98억원이다. 이를 감안하면 수요관리를 통해 2조원의 발전소 투자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전기요금 하락도 기대된다. 기존 발전사업자 외에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해 입찰에 응하는 전력자원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국의 전력 수요관리 비용은 ㎾h당 1.7센트다. ㎾h당 10센트인 발전 비용보다 저렴해 전력시장에서 수요관리 자원을 우선 확보하고 있다. 전력생산가격이 낮아지는 효과가 발생하고 이는 곧 소매요금 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에너지관리시스템(EMS)을 이용해 절약한 전력을 공급발전량과 대등하게 거래할 수 있는 ICT 기반 수요관리자원 시장이 열릴 가능성도 높아졌다. 기존에 없던 ESS서비스 사업자, EMS 공급자, AMI·스마트플러그를 활용한 에너지 빅데이터 서비스 등 새로운 서비스와 시장참여자가 출현하고 다양한 유형의 수요관리 사업모델이 확산될 것으로 기대된다.
산업부는 ESS, EMS, 스마트그리드 분야의 대규모 신규투자를 유도하면 2017년까지 총 3조5000억원 규모의 시장이 창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통해 1만5000개 일자리와 70만~100만㎾의 전력피크 절감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력 시장에 경쟁체제가 본격 도입된다는 예상도 따른다. 발전사와 한전만이 존재하는 경직된 전력시장에 신규 사업자가 등장함으로써 경쟁체제 도입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분석이다.
◇한전 참여, 전력 정보 공개 여부 쟁점 부상= 수요 관리사업자의 전력 거래 시장 진입이 현실화되면서 제도 운용과 관련한 논란도 부상했다. 한전의 시장 참여 여부는 그 핵심에 있다. 한전은 이미 다수 대규모 전력소비자와 주간예고제 등 수요관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방대한 소비자 정보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기존 거래처와 사업에 나선다면 다른 사업자보다 입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병원, 학교 등 중소 수요관리자원의 시장 참여를 막을 수 있는 요인이다. 일각에서 한전의 수요관리시장참여가 공정경쟁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한전이 전력 판매를 독점하고 있어 다른 수요 관리 사업자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며 “이는 신규사업자의 시장진입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한전의 시장 참여로 초기 수요 관리시장의 안정적 운영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따른다. 수요관리시장에 다양한 수요자원을 끌고 들어와 전력 거래시장에서 경쟁이 활발해지고 이로 인한 전기 요금 인하 효과도 클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규정상 한전의 시장참여는 문제가 없다. 한전도 부하관리서비스사업자 등록을 마친 상태다.
전력 소비 정보 공개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전력 소비 정보가 공개됐을 때 제조업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과 수요관리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공개는 필수’라는 의견이 맞선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력 사용 정보 공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제조업 등 산업계에서는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며 “장기적으로 논의될 사항”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의 시장 독점 가능성도 제기된다. 제철, 화학, 전자 업종 등 에너지다소비 사업장을 보유한 대기업이 사업에 나서면 신규 수요관리사업자의 시장 참여가 제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양민승 전력거래소 시장개발처장은 “지능형 수요관리시장이 원할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수요관리사업자의 영업활동이 활발해야 한다”며 “대기업이 계열사를 활용해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은 전체 수요관리 잠재량의 30%만 사업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정부가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