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K사는 무선데이터 통신장비 제조회사고, 영국 E사는 관련 업계의 선도업체다. E사는 유럽 시장에서 K사 점유율이 늘자 보유한 유럽특허 3개를 내세워 특허침해 경고장을 K사에 보냈다. K사가 비침해라고 반박하자 E사는 K사의 유럽 내 고객들에게 경고장 전달 사실과 고객사까지 직·간접 침해로 제소하겠다는 악선전을 했다. 불안을 느낀 유럽 고객들은 K사 제품 구입을 주저했다.
본인의 밥그릇을 빼앗는 경쟁자를 방관할 사업자는 없다. 다국적 FTA 시대에 관세는 더이상 외국 경쟁자의 시장 진입장벽이 될 수 없고, 지식재산권 특히 특허가 강력한 무역장벽으로 부상했다.
지난 몇년 사이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국제특허분쟁 관련 보도로 인해 특허에 대한 세인들의 인지도와 우려가 높다. 법적요소들을 완비한 침해경고장 전달 사실과 직간접 침해피의자에 대한 제소 경고는 특허법과 부정경쟁방지법을 포함한 모든 법에서 허가한 합법적인 재산권 행사 행위다. 이런 행위를 중단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쟁점 특허의 침해피의품 비포함 또는 무효 증명을 통해 부당영업방해로 역공격하는 것이다.
지재권 관련 국내 공공기관의 지원으로 E사가 보유한 쟁점특허 3개의 출원심사 경과기록을 분석한 K사는 특허 1번은 출원자의 청구범위 한정으로 비침해 증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2번과 3번은 범위가 넓어서 비침해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이에 K사는 자비로 추가 선행기술 조사분석 업무를 유럽특허분쟁 경험이 많은 국내 로펌에 의뢰했고, 이 로펌은 관련 선행기술들 존재로 특허 2번과 3번 모두 무효가능하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K사는 다시 국내 로펌의 유럽변리사로부터 무효 가능하고 비침해라는 의견서를 받았다. 이런 의견서를 토대로 K사는 유럽특허청에 재심사를 신청하고, E사에는 영업방해 혐의로 제소하겠다고 경고했다.
특허 업계에는 ‘돈과 시간만 있으면 무효로 만들지 못할 특허가 없다’는 얘기가 있다. 미국 특허는 60% 이상이 개량(improvement) 특허고, 그 결과 관련 선행기술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 쟁점특허를 무효로 만들 수 있다. 즉 국제특허분쟁에 생소한 국내 기업들도 충분히 성공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데, 문제는 해당 기업의 대응 의지와 능력이다. WTO 등 국제통상기구의 관련 이슈는 제쳐두고 우리 정부는 국내 기업들의 국제지재권분쟁에 많은 직간접 지원을 하지만 요람에서 무덤까지 지원하지는 않는다. 또한 수십 년간 국내 대기업에서 국제지재권분쟁 담당을 한 퇴직 임원들이 설립한 지재권분쟁 서비스업체도 많고, 주요 국가의 지재권분쟁 전문가들이 포진한 국내 로펌도 상당수다.
가장 확실한 특허분쟁 대응은 쟁점특허 무력화다. 특허 무력화에는 특허청에서 재심사와 재검토 그리고 법원에서 특허 무효·비침해 확인소송의 3가지 방법이 있다.
미국의 경우에 재심사는 3만달러 내외의 경비와 1년 이내 기간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신속하지만, 재심사 신청자가 심사과정에 참여할 수는 없다. 재검토는 당사자계(inter parte)로 진행하면 특허 출원자나 소유자가 아닌 신청자도 재검토 과정에 참여할 수 있고 일반적으로 30만달러정도 경비와 2년 이내의 시간이 든다.
특허 무효·비침해 확인소송이 가장 강력한 효과를 가지고 있지만 최소 3년에 연간 100만달러 경비가 소요돼 대기업이 아니면 화중지병이다. 세 가지 방법의 공통점은 관련 외국 특허청 및 법원의 경험이 많은 전문가가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특허분쟁이 많이 일어나는 서구 국가들은 불법 영업방해 제재를 매우 엄격하게 하고, E사처럼 허접한 특허를 이용한 악선전에 대한 불법 영업방해 제소는 특허침해 분쟁에 강력한 대응이다. 서구 국가들의 모든 판단은 절대적인 서류와 증거 위주여서 불법 영업방해 제소에 앞서 관련 서류증거 확보를 선행해야 한다.
K사의 경고를 받은 E사는 더이상 악선전이나 이후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 E사의 특허가 유럽 시장의 제2, 제3의 경쟁자를 막는 좋은 진입장벽인 것을 알고 있는 K사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 특허 재심사 신청을 포기했다.
법무법인 바른·미국 특허변호사(Patent Attorney) peter.shin@barunla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