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주요 국가에서 ‘특허박스(Patent Box)’ 도입이 확산되고 있다.
특허박스는 특허기술 활용 촉진과 생산 거점 유출 방지를 목적으로 기업의 수익 가운데 지식재산(IP)으로 발생하는 이익에 비과세하거나 특별과세 형태로 법인세율을 인하하는 제도를 말한다. 특허 활용을 강조하면서 기업에 가장 확실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현재 중국과 영국, 벨기에, 프랑스,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 유럽 주요국가에서 관련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특허권 항목에만 세금을 우대하는 나라도 있고 저작권과 상표, 디자인, 비즈니스 모델에까지 관련 제도를 폭넓게 적용하는 국가도 있다. 적용 범위는 국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고 법인세율이 다르기 때문에 세제 지원 규모(법인세 할인율)도 나라마다 차이가 발생한다.
특허박스는 지식재산을 이용해 제품을 만들어 상용화한 사례에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 등 일부국가는 상용화 제품 지원은 없고 기술을 이전한 사례에는 일부 세제 지원을 해주고 있다. 이 역시 넓은 의미에서는 특허박스로 해석된다.
최근 특허박스에 관심이 높아진 것은 지난해 영국이 관련 제도를 공격적으로 도입한 데 이어 일본까지 내년 특허박스 도입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미국도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을 중심으로 혁신기업에 특허박스 도입 논의를 시작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특허박스 도입과 확산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특허박스를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하곤 한다. 기업 특허 활용에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지만 국가로서는 재정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를 오픈했을 때 얻을 득실에 대한 판단은 물론이고 경쟁국과의 차별화도 함께 고민이 필요하다.
특허박스 제도는 기업에 장점이 많다. 우선 기업은 기술 기반 사업에서 세제 혜택을 받으면서 적극적인 혁신과 연구개발, 특허 관리 활동에 나설 수 있다. 특허박스를 선제적으로 도입한 국가는 외국 자본이나 기업을 국내로 유치할 수 있는 기회도 잡을 수 있다. 지식재산 기반 산업 고도화를 이루면서 일자리를 늘릴 수도 있다.
반면에 세제와 연결되다 보니 정부 부담이 따른다. 정부에서는 IP 기반 산업 활성화는 좋지만 세수가 줄어드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활성화와 세수 확보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둘 것인지 판단이 중요하다.
대다수 국가에서 중요 기술특허는 대기업이 보유하고 있다. 세제 지원의 실질적 효과가 중소, 벤처기업보다 대기업에 편중될 것이라는 점은 또다른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도 특허박스 도입과 확산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져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해외 주요 국가가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관련 제도의 도입 여부, 도입 정도의 점검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특허박스는 선제적으로 도입한 나라가 큰 이익을 가져가기 쉬운 구조다. 모든 나라가 특허박스를 도입하면 경쟁자와의 상대적 우위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는 공식적으로 R&D 투자 단계에서의 세제지원과 병행해 특허박스 제도를 도입하자고 정부에 공식 건의했다. 우리나라 산업 성장과 우리 기업이 주요 경쟁상대와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대한상의는 영국이 특허박스 법안을 시행하면서 다국적 제약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5억파운드(약 8800억원) 투자를 이끌어낸 것 등을 사례로 제시했다.
우리 정부는 아직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해외 동향을 꾸준히 모니터링하면서 부처 간 협의는 수차례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특허박스 확산 여부와 제도 시행은 아직까지 명쾌하지 않다.
그 것은 역시 세수 때문이다. 특허권 활용과 보호를 강조하는 국가지식재산위원회, 특허청과 국가 재정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 국세청 등 부처 기능별로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강민수 광개토연구소 대표변리사는 “특허박스는 세수와 연관된 영역으로 우선적으로 기재부의 판단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며 “지식재산 활성화라는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이 과정에서 다른 분야에 쓸 예산이 줄어드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정부가 종합적 검토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