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이달 초 전자신문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전자신문이 한 달 전 보도한 ‘갤럭시S5 출시 코앞, 카메라렌즈 수율 잡기 안간힘’ 등의 기사가 삼성전자 브랜드 가치에 피해를 줬다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전자신문 보도를 미국·중국·인도·호주 등의 매체 6곳에서 인용보도했고, 그 결과 63억원가량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민사소송이 시작되자 전 세계 언론이 동시다발적으로 기사를 썼다. ‘갤럭시S5 렌즈 수율문제를 지적한 전자신문에 삼성이 소송을 제기했다’는 내용이다. 미주·유럽·아랍·아시아권 국가 100여 매체가 잇달아 보도했다. 보도 확산을 막겠다고 시작한 소송이지만 결과는 오히려 정반대다. 자충수였다.
삼성전자의 주장처럼 6개 매체 인용보도가 63억원의 피해를 야기했다고 가정한다면 100개 매체일 때 그 피해규모는 ‘1050억원+α’로 늘어난다. 피해를 키운 당사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삼성전자 자신이다. 정확히 말하면 억지 소송을 부추긴 삼성전자 내부의 일부 인사다.
애석하게도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지난 주말의 일이다. 미국에 수출한 갤럭시S5에서 카메라 오류가 불거졌다. 신제품 출시 2주일 만이다. 삼성전자는 “일부 제품에서 발생한 오류”임을 애써 강조했다. 그 말을 믿는다. 아니 ‘일부’가 아닌 ‘극히 일부’이길 바란다.
실망스럽다. 과연 대다수가 아닌 일부 제품에서만 오류가 발생했으니 전 세계 고객들이 다행스러운 일로 치부해 줄까. 19년 전 구미공장에서 ‘불량 제품 화형식’을 치른 후 애니콜 성공신화를 일궈낸 삼성전자의 정신은 지금의 모습과는 판이하기에 실망감은 더 크다.
분명 전자신문은 갤럭시S5 출시 한 달 전 카메라 렌즈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줬다. 차기 스마트폰 전략제품에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충고 의미의 기사였다. 그러나 그 충고는 삼성전자 IM(IT&모바일)부문의 자기변명으로 철저히 무시됐고, 오히려 오보(誤報)로 내몰려 소송거리로 전락했다.
렌즈 수율과 카메라 오류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변명일 뿐이다. 언론이 카메라 모듈 부분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면 삼성전자는 부분품, 모듈, 카메라 기능 전반을 더 세심하게 살폈어야 했다. 화형식까지 치렀던 이건희 회장의 품질경영 정신이 살아 있다면 최소한 그랬어야 했다.
자만해서는 절대 안 된다. 피처폰 시장에서 노키아를 제치며 1위 자리에 우뚝 선 삼성전자였지만 애플의 혁신에 밀려 한동안 바닥을 경험해보지 않았는가. 갤럭시 시리즈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지 이제 겨우 5년이다. 지금까지는 선두업체인 애플만 상대하면 됐지만 앞으로는 물량 공세를 앞세운 더 많은 중국 기업과 절체절명의 승부를 벌여야 한다.
오판하지 말라는 얘기다. 현재의 1위가 영원할 수는 없다. 조금이라도 더 정상에 머무르려면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야 한다.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로 변신해 세계를 호령하던 노키아·소니·코닥의 예를 보라. 그 영화는 어느 새 옛이야기가 됐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우리나라 대표선수인 삼성은 지금과 같은 어이없는 실수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외부의 지적에 겸허하게 귀기울여야 한다. 오만할 때 오판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혁신에 혁신을 거듭할 때 나도 살고, 회사도 살고, 나라도 산다. 힘내라, 삼성전자!
최정훈 정보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