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5월 11일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가 체스 세계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를 이겼다. 6번의 대국에서 2승1패3무를 기록, 정식 체스 경기에서 챔피언을 꺾은 최초의 컴퓨터가 됐다. 인공지능과 인간지성의 대결로 주목을 받았던 세기의 대결이 컴퓨터의 승리로 끝난 셈이었다.
인공지능의 도전은 한 해 전부터 시작됐다. 1989년부터 체스용으로 개발된 딥 블루는 1996년 2월10일 카스파로프와 첫 대결을 펼쳤다. 첫 대국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이어진 다섯 번의 대국에서 3패2무를 기록, 최종 성적 1승3패2무로 패했다. 진 게임이었지만 첫 대국에서 보여준 승리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중국인 과학자 슈펑슝(許峯雄) 등 5명으로 구성된 개발 팀은 1년 간 절치부심하며 성능 향상 작업을 단행했다. 1997년 완성된 딥 블루는 약 2m 높이에 1.4톤의 무게로, 32개 마이크로프로세서에 16개씩, 총 512개 프로세서를 장착했다. 처리속도는 1기가플롭스로 초당 10억회 연산이 가능했다. 성능만으로 따지면 당시 세계에서 259번째로 뛰어난 슈퍼컴퓨터였다.
여기에 특별히 설계한 480개 체스 칩이 들어갔다. 메모리에는 과거 100년 간 열린 주요 체스 경기의 기보, 유명 선수들의 경기 스타일이 내장됐다. 97년 카스파로프를 꺾은 디퍼 블루 시스템은 12수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인간이 내다볼 수 있다는 10수 보다 앞선 예측 능력이다.
딥블루는 카네기 멜론 대학교에서 슈펑슝 교수가 만든 칩테스트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 프로젝트 첫 작품은 ‘딥 쏘우트(Deep Thought)’라는 컴퓨터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는 컴퓨터 이름을 땄다. 슈 교수는 1989년 IBM에 합류해 머레이 캠벨 등과 공동 작업을 거쳐 딥 블루를 탄생시켰다.
컴퓨터와 인간의 대결은 현재진행형이다. 딥블루를 만든 IBM은 2011년 2월 ‘왓슨’이라는 슈퍼컴퓨터를 인기 퀴즈쇼 ‘제퍼디’에 세 차례 출연시켰다. 인터넷에 연결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힌트를 학습해 문제를 맞혔다. 당시 왓슨은 7만7147달러의 상금을 얻으며 제퍼디 최다 우승자 켄 제닝스, 최다 상금 수상자 브래디 러터를 압도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