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의 최대 화두는 세월호 사고 수습이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 여파가 경기위축을 야기하면서 또 하나의 숙제를 안게 됐다. 작년 말 발표한 제4차 투자활성화대책과 올해 초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바탕으로 경제 활성화를 꾀했던 정부는 고민에 휩싸였다. 특히 예산의 보건·복지 부문 집중 배정(105조9000억원)으로 상대적으로 부족해진 타 분야 지원을 ‘민간투자 확대’로 보완하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됐다.
◇위축되는 기업 투자…세월호 사고 여파까지
지난 3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내 매출액 기준 상위 600대 기업은 올해 약 133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는 작년보다 6.1% 증가한 수치다. 올해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응답한 기업(255개)은 축소하겠다고 응답한 기업(145개)보다 약 1.8배 많았다. 이유로는 경쟁력 제고를 위한 선행투자(24.4%), 신제품 생산 및 기술개발 강화(23.5%) 등을 꼽았다.
얼핏 긍정 신호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는 600대 기업의 2004~2013년 평균 투자 증가율인 9.9%보다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투자활성화를 위한 정책과제로 감세 등 세제지원 확대(24.6%), 자금조달 등 금융지원 확대(22.2%), 투자관련 규제 완화(16.4%) 등을 꼽았다.
최근 정책금융공사가 조사한 주요기업 설비투자 전망에 따르면 2013년 국내 주요기업의 설비투자 실적은 2012년(131조원) 대비 0.6% 감소한 130조3000억원이다. 제조업 설비투자가 1.1% 감소했고, 비제조업은 0.1% 소폭 증가에 그쳤다. 2013년 실적은 연초 수립한 계획(139조9000억원) 대비 6.9% 낮은 수치다.
올해 설비투자 계획은 작년 실적 대비 4.5% 증가한 136조1000억원으로 조사됐다. 대기업 계획은 129조4000억원으로 작년보다 5.1% 늘었지만, 중소기업은 6조7000억원으로 7.1% 줄었다. 중소기업 설비투자 비용은 지난 2012년(8조2000억원)부터 계속 줄어들고 있다. 투자 부진 요인으로는 수요 부진, 불확실한 경기전망, 자금조달난 등을 꼽았다.
이런 상황에서 세월호 사고 등의 여파로 기업 투자와 민간 소비가 한층 위축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사고가 경기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선제적 대응’의 일환으로 상반기 재정집행 규모를 당초 계획보다 7조8000억원 늘리기로 했다. 하반기 재정을 앞당겨 쓰는 것으로, 민간투자에 큰 기대를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보여준 셈이다.
◇기반은 마련했지만…효과 극대화·분야별 대안 마련이 숙제
상황은 악화되고 있지만 민간투자 확대를 위한 기반 자체는 마련됐다는 게 업계 평가다. 올해 기획재정부의 중점 추진과제, 제4차 투자활성화대책,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등 주요 정책에는 다양한 민간투자 활성화 대책이 포함됐다.
‘규제개혁’은 대표적 민간투자 활성화 대책으로 꼽힌다. 지난 3월 전경련은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요인은 규제”라며 “정부 부처별 규제개혁 목표를 할당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후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규제개혁장관회의를 개최하고 건의된 52개 과제 중 공인인증제도 개선, 원격의료 허용 등 41건을 수용했다. 특히 산지규제 완화, 관광호텔 입지 규제 완화 등이 민간투자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됐다.
투자활성화대책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다양한 투자 확대 방안을 담았다. 투자활성화대책은 현장 대기 프로젝트 발굴·지원과 유망서비스 산업 육성, 지자체 규제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규제혁파, 5대 유망 서비스업 등 서비스업 발전기반 구축과 지역투자 걸림돌 제거 등을 통한 투자 유도를 주요 과제로 선정했다.
하지만 가시적 변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업계는 정책 효과가 아직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상황으로 평가했다.
기업은 대내외 여건을 고려해 여전히 수세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설비투자는 전분기 대비 1.3% 감소했다. 지난 2012년 4분기(-3.3%) 이후 처음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하지만 작년 4분기 설비투자가 전분기 대비 5.6%나 증가한 데 따른 기저효과라는 분석도 있다.
업계는 부문별 구체적인 민간투자 활성화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총론은 있지만 각론은 없다는 지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소재·부품 민간투자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해양수산부가 ‘수산전문 투자자협의회’를 발족하는 등 일부 움직임이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정부 한 관계자는 “재정이 부족한 상황인 만큼 민간투자 유도는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관련 정책 마련을 위해서는 여러 투자자·기업 협조를 구해야 하는 등 선결 과제가 많아 쉽지만은 않은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