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어 국내 기업이 현지에서 특허분쟁을 많이 벌이고 있는 곳이 유럽 특히 독일이다. 독일 특허분쟁의 특징은 상대적으로 취득 용이한 가처분(preliminary injunction)과 세관압류(customs’ detention)가 많다. 가처분은 독일 특허권자가 유효한 특허와 긴급한 침해 피해 그리고 침해 입증자료만 제출하면 침해 피의자의 구두심리 없이 판사 재량으로 비교적 쉽게 결론이 내려진다. 특히 조기금지(fast injunction)는 한두 시간 만에 내려진다.
독일법원은 전시회 참가는 첫 출시고, 이는 가처분의 침해 긴급성 요건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판단한다. 또 침해는 관련 특허의 기술적 판단 없이 부스 사진이나 안내서로 할 수 있는데, 안내서는 대체적으로 판매를 하려는 새 제품·기술의 중요 부분을 설명하고 있어 독일 특허권자에게 유용한 증거가 된다. 독일 특허침해 가처분의 혹독한 경험을 한 국내 IT업체 K사의 사례를 보자.
K사가 몇년 동안 준비한 새 IT제품을 세빗(CeBIT)에 전시하자 네덜란드의 N사는 본인의 독일 특허침해로 K사에 대한 가처분명령을 전시 이틀째 아침에 보내왔다. 국제 특허분쟁 경험이 없는 K사는 가처분 대상 제품을 제외한 나머지 제품으로 전시를 마쳤다.
그 후 K사는 N사의 특허를 회피한 새 IT제품을 개발해서 다음해 세빗에 참가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N사는 독일세관과 경찰을 대동해 K사의 부스를 찾아와서 제품을 압수해갔다. 부랴부랴 재독 한국영사관을 통해서 독일 변호사에게 의뢰를 했지만 압수품 반환소송은 최소 열흘이 걸린다는 얘기에 소송을 포기하고 귀국했다.
침해 피의자가 유럽 전시회에서 침해 가처분에 대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해당 가처분은 다음 전시회에도 유효하다. 즉 N사는 K사의 두 번째 세빗 참가를 원가처분명령으로 제지할 수 있었다.
EU세관은 침해 피의품의 세관 압류를 국경뿐 아니라 전시회에서 할 수 있고 부스를 강제 철거할 수도 있다. 세관 압류는 법원 가처분에 비해 저비용이고 가처분의 침해 가능성이 아닌 침해 의심만으로도 명령할 수 있지만, 침해 피의자는 세관 압류 가처분신청을 할 법적권리가 없다. 이런 사유로 유럽 특허권자들은 침해 가처분과 함께 세관 압류를 애용한다.
K사는 귀국 즉시 유럽 특허분쟁 전문 국내 로펌 B사를 수임했다. B로펌은 N사의 쟁점특허들과 K사의 IT제품 관련 모든 특허를 조사 분석했고, 그 결과 3개의 선행기술을 발견했다. 다시 쟁점특허들의 출원심사 경과기록을 분석하자 쟁점특허 1개는 무효화가 가능하고 다른 하나는 비침해지만 침해 리스크가 있는 것으로 판단됐다.
K사는 이러한 증거를 토대로 ‘방어서면(protective letter)’을 준비해 세빗 관할법원의 특허분쟁법정(Patent Dispute Chamber)과 EU세관에 제출하고, N사의 첫 번째 특허무효심판을 독일 연방특허법원에 신청했다.
방어서면은 유럽 특허분쟁에 가장 중요한 방어수단이다. 관련 선행기술, 특허전문가의 의견서, 무효심판 신청서 등의 구체적인 법원 가처분 또는 세관 압류에 항변 내용을 포함해야 효과가 있다. 일반적으로 법원은 제출된 방어서면 심리를 하고, 특히 가처분신청 전에 제출되면 반드시 심리를 하는데 별도 증거 채택은 할 수 없다.
판단은 판사의 쟁점특허 무효 심증으로 하고, 일반적으로 전시회 부스에 침해품이 없는 수준이면 되지만 기타 EU 국가에서 동일 침해품이 판매·청약되면 방어서면 제출자가 비침해 증명을 해야 한다. 가처분 무효판결이 나면 전시회 부스 재설치 등의 비용 배상을 받을 수 있다. 세관 압류 방지용 방어서면 제출은 해당 침해 피의품의 EU 도착 시점 이전에 해야 효과적이다. 세관은 방어서면을 반드시 검토하지는 않지만, 쟁점특허 무효심판 신청서를 포함한 방어서면은 당연히 압류 최종허가(clarification)에 큰 영향을 미친다.
B로펌은 방어서면 일체와 법원과 세관의 판결들을 N사에 전달했고, N사는 K사의 세 번째 세빗 참가를 더이상 방해하지 않았고 협상도 제안해왔다.
법무법인 바른·미국 특허변호사(Patent Attorney) peter.shin@barunla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