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가을, 서울 모처의 LG전자 서비스센터를 방문했을 때 당황한 적이 있다. 족히 50인치는 넘어 보이는 엑스캔버스 PDP TV에 ‘고화질(HD) TV’라는 팻말을 붙여놓고 아날로그 방송을 틀어놓고 있었다. 해당 매장의 단순한 실수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5년 뒤 디지털 전환을 앞두고 전사 차원의 HD TV 마케팅이 필요했던 시점이라 이해하기 어려웠다.
얼마 뒤 ‘윙고’ CD 플레이어를 수리하러 삼성전자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파브 PDP TV에 지상파 HD 방송을 띄워놓고 ‘HD 고화질’을 강조하고 있었다. 기술력을 떠나 마케팅 측면의 치밀함에서 삼성이 한발 앞서 있었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인과관계는 분명치 않지만 결과적으로 디지털방송 전환을 전후해 LG전자는 삼성전자에 HD TV에서 1위 자리를 허락해야 했다.
그리고 7년, 다시금 ‘TV 전쟁’이 시작됐다. 기존 풀HD(2K)의 4배 화질을 자랑하는 4K 울트라HD(UHD)다. HD 때와 달리 외산 업체들이 물러났고, 링에는 ‘삼성’과 ‘LG’만 올라 리턴매치를 펼친다. 삼성은 커브드를 앞세워 ‘1등 사수’를, LG는 3D와 각종 특화기능으로 ‘1등 탈환’을 꿈꾼다. 얼마 전 방문한 양사 매장에는 ‘울트라HD’ ‘UHD’ 단어가 전면에 붙었다.
여기서 소비자들은 갸우뚱하게 된다. 울트라HD(UHD)가 무엇인지, 얼마 전 바꾼 TV를 왜 또 바꿔야 하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방송의 ‘HD’ 워터마크만 보고 그것이 HD인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 UHD까지 등장하니 머리가 아프다.
TV만 잘 만든다고 될 것이 아니다. 소비자가 UHD TV를 구입해야 하는 이유,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여건 조성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다음 달 월드컵과 9월 아시안게임은 분위기 조성을 위한 좋은 기회다.
전송규격 문제로 가정에서 볼 수 없더라도 공공장소에서 많은 국민이 UHD를 봐야 한다. 그렇게 UHD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면 UHD 관련 산업에 많은 투자가 일어나 ‘UHD 생태계’가 선순환을 이룬다. UHD 세계 1등은 내부에서 먼저 시작해야 한다.
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