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친구는 전자제품 제조업자다. 어느 날 그는 필자에게 싱가포르 특허 1개와 침해경고장 분석을 부탁했다. 영국 D사가 소유한 싱가포르 특허는 선풍기 날개는 없지만 날개 부위 프레임에서 공기를 분사해서 공기압 차이로 바람을 만드는 ‘날개 없는 선풍기(fanless fan)’에 관한 것이었다. 청구항을 검토한 필자는 친구에게 전 품목을 필자에게 보내라고 했다.
특허권의 범위는 청구항으로 한정된다. 그래서 청구항 해석과 침해피의품 비교는 침해분쟁 대응의 기본이다. D사의 날개 없는 선풍기 특허는 몸체(body)와 날개(fan)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고, 청구항 1개는 날개 대비 몸체 크기가 55~65%를 청구하고 있다. 그 제품들의 팬과 몸체 크기는 청구 범위보다 0.5~1.5㎝가 컸다. 다른 청구항은 바닥에 장착된 전기모터가 공기를 몸체에서 날개로 뿜어올리는 기능을 청구했다. 친구는 공기통과 튜브 안에 공기속도 증가용 다수의 바람막이를 장착해서 월등한 냉각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침해품이 청구항 내용을 그대로 포함하고 있으면 문헌침해라고 한다. 하지만 침해자가 바보가 아니고서야 청구항을 100% 베끼지는 않는다. 쟁점특허의 매우 유사한 기능(function)을 매우 유사한 방법(way)으로 사용해 매우 유사한 결과(result)를 만들면 균등침해인데(FWR test), 특허발명의 발명목적이 큰 결정요소가 된다. 그런데 발명목적 파악을 위해서는 발명자와 인터뷰라도 해야 하는데 침해자는 발명자의 생존 여부는 물론이고 체류국가, 연락처 등 아는 것이 전혀 없다.
출원심사 경과기록은 특허 심사관과 출원인의 특허출원 관련 모든 소통을 포함하고 있는 파일이다. 그 안에는 출원인이 주장하는 발명이 해결하려는 문제, 즉 발명목적을 파악할 자료가 많다. 또 출원인이 청구항 범위 한정한 증거를 찾을 수 있고, 이 증거는 문헌·균등침해 관련 확장한 청구항 범위 주장을 할 수 없게 하는 금반언(禁反言) 역할을 한다.
D사 특허의 심사경과 기록에는 전통적인 선풍기들의 단점인 소음과 날개로 인한 부상위험 제거 등의 특장점이 발명목적으로 기술돼 있었다. 하지만 공기속도 증가용 다수의 바람막이를 통한 냉각기능 향상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친구는 본인이 D사 특허를 침해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지만, 필자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왜냐하면 친구 제품은 D사의 공기분출용 전기모터를 몸체 바닥에 장착했기 때문이다.
터미네이터 영화의 기본 줄거리는 미래인류의 지도자인 존 오코너를 출생하지 못하게끔 살인로봇이 미래에서 현재로 와서 존의 생모인 사라 오코너부터 암살하려는 것이다. 이를 특허분쟁 대응에 적용하면 쟁점특허가 없으면 관련침해는 애초부터 없다는 것이다. 즉 쟁점특허를 무효로 만드는 것이 최상의 특허분쟁 대응이다.
특허발명은 기본적으로 이전에 존재하던 모든 것들(선행기술)에 비해서 새로워야 하며(신규성), 쟁점 특허발명 분야를 늘 다루는 당업자들이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비약적인 기술적·창의적 발전이 있어야(진보성) 한다. 선행기술은 발명의 특허성과 관련만 있으면 종류, 형태, 지역, 시간 등을 개의치 않기에 관련조사는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다. 다행인 것은 출원심사 중에 검토된 수많은 선행기술이 경과기록에 있고 이런 선행기술들을 바탕으로 다른 선행기술들을 찾을 수 있다.
특허 유효와 침해가 사실인 최악의 때에도 사기적인 방법으로 특허등록을 한 부당행위(inequitable conduct)를 증명하면 특허는 무효가 된다. 출원자의 부당행위 증명에 가장 강력한 증거는 발명의 특허성을 부인시킬 수 있는 중요 선행기술 은폐인데 이 또한 심사경과기록을 바탕으로 찾을 수 있다.
D사의 출원심사 경과기록을 토대로 선행기술들을 조사한 결과 두 번째 청구항 무효화를 할 수 있는 선행기술들을 찾았다. 필자는 이런 선행기술들을 토대로 한 무효주장과 날개와 몸체의 비율이 친구의 제품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D사에 보냈다. 답변일로부터 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D사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법무법인 바른·미국 특허변호사(Patent Attorney) peter.shin@barunla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