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화장품보존제 기준 '모르쇠'로 일관

국민 건강증진에 앞장서야 할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내분비계 장애 위험이 있는 `파라벤`을 비롯한 화장품 보존제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식약처는 지난 2011년 9월 `화장품에 일부 파라벤류의 사용에 대한 평가` 연구 보고서에서 프로필파라벤, 부틸파라벤 사용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배합 기준 0.4%를 0.19%로 낮추는 기준 개선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연구 발표 2년 반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개선안을 내놓지 않아 빈축을 사고 있다.



화장품 방부제 종류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중 단연 논란의 중심에 있는 성분은 파라벤. 내분비계 교란물질로 정자 수 감소와 기형, 유방암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유럽 소비자안정성과학위원회에서는 프로필파라벤과 부틸파라벤의 배합 한도를 0.19% 이하로 낮추라고 권고하고 있는 상황. 덴마크는 아예 3세 이하 어린이용 제품에 대해 파라벤 4종류의 사용을 금지했다.

국내 기준은 아이용, 성인용 구분 없이 파라벤 함량 0.4% 이하. 개선안의 진행사항에 관해 묻기 위해 식약처에 연락을 취했다. 수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한 끝에 연락이 닿은 식약처 대변인실 이철승 주무관은 “확인 후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말 뿐 끝끝내 답변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식약처, 화장품보존제 기준 '모르쇠'로 일관

기준 개선이 지지부진한 사이, 화장품을 고르는 소비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파라벤 유해성에 관련한 얘기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데 제조사 측은 “화장품을 변질을 막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는 것. 소비자는 어떤 기준을 우선으로 삼아야 할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소비자의 마음을 파고드는 제품이 등장하게 된다. 바로 무(無)방부제, 천연방부제를 표방한 화장품들인데, 파라벤과 페녹시에탄올과 같은 보존제의 유해성 문제가 불거지자 업체들이 앞다투어 내놓은 제품이다. 이들 제품이 화학보존제의 안전한 대안이 되어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못하다. 가장 큰 문제는 천연방부제의 안정성에 관한 사용 농도나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방부제 성분은 인간의 신체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군다나 식물에서 추출한 천연방부제는 화학방부제에 비해 많은 양을 사용해야 하므로 오히려 피부에 더 많은 자극을 주거나 세포 손상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설명.

상황이 이런데도 천연방부제에 대한 판단 기준 자체가 없다 보니 고농도의 방부제가 화장품에 들어가더라도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 이에 대해 이철승 주무관은 “‘천연방부제’라는 말은 식약처 입장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성분이니 구체적인 성분명으로 접근하는 게 맞을 것”이라며 “제조사에게 사용가능한 성분과 아닌 성분을 고시하고 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공기관인 식약처의 존재 이유는 제조사가 아닌 소비자를 위해서다. 즉 제조사에게 친절한 설명이 아닌 국민에게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수많은 성분을 ‘천연방부제’라는 말로 묶어 설명하는 화장품 브랜드의 광고 속에서 소비자가 길고 어려운 성분명을 일일이 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그것들의 적정함량까지 찾아내라고 하는 것은 성분 안전에 대한 책임을 소비자에게 지나치게 전가하는 행위다. 국민 보건과 직결되는 문제이니 만큼 `천연방부제`로 통칭되는 성분에 대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이에 대해 이 주무관은 같은 입장만 되풀이하며 통화를 거부했다.

소비자는 결국 파라벤을 비롯한 화학방부제의 유해성을 피하려 돌아간 길에서 또다시 높은 벽을 마주하게 된다. 식약처는 소비자에게 화장품 구매 전 꼼꼼하게 살피라는 당부를 하기 이전에 파라벤 기준 개선안 및 명확한 천연 화장품의 임상 기준 마련부터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전자신문인터넷 라이프팀

황민교 기자 life@etnews.com